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화장 안 해도 도시락은 직접 만들어
나는 먹을 것에 미친 사람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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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은 안 해도 내가 먹을 도시락은 내 손으로 만들었다. 유엔에서 일하고 싶어 17세에 울산을 떠나 홀로 미국 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글로벌 기업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할 때도 그랬다. 화려한 건 아니었다. 동네에서 가장 맛있다는 빵과 하몽 몇 조각, 과일 정도. 이유는 하나였다.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인생 최대의 행복을 놓치기 싫었다. 그때 깨달았다. 재료가 맛의 99%라는 것을. 그리고 상상했다. ‘아침마다 이런 신선한 식재료를 문앞에 배송해주면 좋을 텐데 ….’

국내 최초의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체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2015년 더파머스를 창업했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던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을 열었다. 마켓컬리 매출은 4년 만에 30억원에서 1560억원으로 늘었다. 회원 수는 200만 명을 넘었다. 투자도 1800억원이나 받았다. 유통 대기업들도 새벽배송을 따라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해 스스로를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에 빗대 ‘티라노과(科)’라고 하는 김 대표를 서울 마장동의 고깃집 본앤브레드에서 만났다. 청바지에 운동화, 편안한 후드티 차림으로 한손에 커피 텀블러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 맛없는 걸 먹는 것”이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 한 가지

김 대표는 음식에 미친 사람이다. 휴가를 갈 때도 가고 싶은 레스토랑 예약에 성공하면 그때서야 비행기표를 사고, 숙소를 잡았다. 미국,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20대를 보내며 길거리 음식점부터 고급 레스토랑까지 다 다녔다. 그는 “좋은 식재료를 골라 알리고 파는 지금의 일은 완전한 ‘덕업일치’(자기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라고 했다.

음식에 대한 열정은 어릴 적 외할머니로부터 배운 것 같다고 했다. 의사 부부인 부모 대신 김 대표와 동생을 돌봐줬던 외할머니는 안동 음식의 대가였다.

“인생에서 처음 기억나는 음식이 갓김치와 보리굴비예요. 네다섯 살 때쯤이었을 텐데, 아이들이 먹기는 어려운 음식이죠. 어릴 때부터 어른 입맛에 길들여졌습니다.”

김 대표는 어린 시절을 울산에서 보냈다. 그곳엔 고기로 유명한 봉계라는 동네가 있다. 외할머니가 봉계에서 사서 쪄주던 고기의 맛, ‘슴슴’했던 불고기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주문한 고기가 나왔다. 살치살을 한 점 집어든 그는 “정말 맛있는 부위”라며 “생선, 고기 등 ‘남의 살’은 다 맛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스트레스를 좀처럼 받지 않는 성격이라는 그는 “힘든 일이 생기면 그냥 고기 먹고, 와인 마시고 잊어 버린다”고 했다.

음식을 먹어보는 게 일인 그에게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무엇을 택하겠냐’고 물었다. 김 대표는 “세상에서 이젠 못 먹는 게 딱 하나 있다”며 “그걸 먹고 싶다”고 답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경상도식으로 끓여준 ‘빨간 소고깃국’.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빨간 소고깃국에 대한 그리움을 더 커지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사과 농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김 대표는 마켓컬리에서 파는 모든 상품을 먹어 본다. 직접 산지도 찾아간다. 좋은 소금을 찾기 위해 먹은 걸 다 게워내며 신안 앞바다를 헤맸다. 양계장과 과수 농가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사연이 없는 제품이 거의 없어요. 본앤브레드는 원래 1~2㎏씩 한우를 팔던 정육점이에요. 마켓컬리 초기에 1~2인분의 고기로 나눠 꼭 팔고 싶다고 여러 번 이곳을 찾아와 설득했고, 초기에 마켓컬리 정육 품질을 높여준 곳이에요.” 마켓컬리에 상품을 공급하는 농가와 제조사 대부분은 연 매출이 100억원 미만이다. 그는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면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마켓컬리는 ‘새벽배송’이라는 시간 싸움에서 이긴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경쟁력은 신선식품 유통 생태계와 콘텐츠를 갖췄다는 점이다. 마켓컬리는 신선식품을 전부 직접 매입한다. 도매상들을 거치며 떠안는 생산자들의 재고 부담 등을 줄여주고, 현금 지급을 더 빨리 해줄 수 있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마켓컬리 전용 상품도 30% 정도 있다. 다른 곳에서 생산하게 하고 일명 ‘라벨갈이’를 하는 식의 자체상표(PB) 상품은 없다. 우드앤브릭, 브레댄코 등 소규모 베이커리가 마켓컬리 채널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그들의 이름으로 판매한다.

전국 방방곡곡, 세계 여러 나라의 농축수산물 산지를 가본 그는 “사과농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과수원은 한 20년 해야 잘한다고 해요. 40~50년은 기본이고, 대를 이어 하는 분들이 많아요. 스타트업이 단기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만 저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에요. 매일매일 조금씩 꼼수 안 쓰고 무언가를 해내는 것. 농부들에게서 그 성실함에서 오는 큰 결실들을 배웠죠.”

컬리는 공부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기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차돌박이 솥밥이 나왔다. 흰 쌀에 한우 차돌박이와 송송 썬 쪽파를 넣어 고슬하게 지은 밥이다. 밥을 한 숟갈 뜬 김 대표는 ‘마켓컬리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하나라도 제대로 된 것으로만 팔 것.’ 그러기 위해선 상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는 공부가 필수라고 말했다.

제주목초우유는 문 닫기 직전의 제주 목장을 설득해 만들어낸 상품이다. 마켓컬리에서 아직 우유를 팔지 않던 2015년 7월 한 상품기획자(MD)가 “우리도 우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1년이 걸렸다. MD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수십 개의 목장을 훑고 다녔다. 실제 제품이 나온 건 다음해 8월이다. 김 대표는 “식초 하나, 식빵 하나를 출시하려고 해도 꼼꼼하게 따지는 게 우리만의 방식이고 모든 MD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게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소개했다. 마켓컬리의 상품 소개 등을 쓰는 작가들도 MD와 함께 현장에 가보도록 한다.

철저한 공부는 마켓컬리를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다.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 때다. 다른 업체들이 살충제 계란을 전량 회수할 때도 마켓컬리의 계란은 안전했다.

음식은 진화하는 스승이다

김 대표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사업 초기에는 매월 15일, 30일이 두려웠다고 했다. 몇 안 되는 직원들에게 월급 줄 돈이 없었다. 대금 결제 날도 마찬가지였다. 상추 농사, 계란 농장을 꾸리는 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한 달만 더 기다려 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때도 확신이 있었다. 누구나 믿고 살 수 있는 식자재를 파는 이 사업은 분명히 잘될 것이라는 신념이었다. 사업 초창기 한 소비자가 “사과가 달지 않다”는 상품평을 남기자 직접 수화기를 든 적도 있다. “현지에서 맛보고 공급받은 사과인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먹다 남은 반쪽이라도 보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신뢰를 지키겠다는 절박함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요즘은 책임감에 대해 고민한다. 사람과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현재 직원은 200여 명. 몸집이 커질수록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승부는 여기서 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 품질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 김 대표는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경우에도 마켓컬리가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는 ‘이머전시(응급) 플랜’까지 짜놨다”며 “사업 첫날의 마켓컬리를 영원한 경쟁자로 삼으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200만 명의 회원이 모두 MD가 됐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컬리 러버스’라는 우수 회원들은 컬리에 입점했으면 하는 제품을 요청하고 리뷰까지 해줘요. 최근에는 충북 어떤 동네에서 처음 수확한 부추를 판매해달라고 부탁한 분도 있었어요.” 그는 소비자가 모두 스승이고, 그들과 함께 더 좋은 식재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식당을 나선 시간은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그는 운동화 끈을 다시 꽉 맸다. 사무실로 들어간다고 했다. 힘들지 않냐는 말에 뒤돌아 웃으며 말했다. “좋아서 하는 일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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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켓컬리 '샛별 배송'은 …

마켓컬리는 전날 밤 11시까지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등으로 신선 식재료를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문 앞에 배송해주는 ‘샛별배송’을 시작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샛별배송 대상 지역은 서울과 경기 지역이다.

마켓컬리는 맞벌이 부부와 1~2인 가구 등의 장보기 패턴, 라이프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창업 4년 만에 회원 수 200만 명, 월 매출 100억원대 회사로 성장했다.

마켓컬리에 주문하는 사람이 늘면서 서울 아파트 아침 풍경도 달라졌다. 서울 강남과 마포 등 30~40대가 많이 사는 단지에는 아침마다 4~5가구 중 한 곳에 신선식품을 담은 배송 박스가 놓여 있을 정도다.

■약력

△1983년 부산 출생
△2007년 미국 웰즐리대 정치학과 졸업
△2007년 골드만삭스 홍콩지사
△2010년 맥킨지앤드컴퍼니 홍콩지사
△2012년 싱가포르 국영 투자회사 테마섹홀딩스
△2013년 베인앤드컴퍼니 한국지사
△2015년 (주)컬리(옛 더파머스) 설립


김슬아 대표의 단골집 본앤브레드

부위별로 맛보는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


서울 마장동에 있는 본앤브레드는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이다. 오마카세란 주방장이 메뉴를 알아서 내주는 방식이다. 대표 메뉴는 ‘한우 오마카세’. 하루 한 팀만 사전 예약을 받는다. 정상원 대표가 그날 고른 부위를 직접 구워 서빙한다. 1++ 등급의 국내산 암소를 부위별로 맛볼 수 있다. 인원에 상관없이 최대 8명까지 팀별로 가격을 받는다.

정 대표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우 도매상 ‘한우고향’을 이어받아 2015년 이 식당을 열었다. 1978년 개점한 한우고향은 당시 마장동 우시장에서 프리미엄 한우만을 취급하는 가게로 유명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정 대표는 아버지의 가게 옆에 원테이블 레스토랑을 열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예약하기 어려운 집’이 됐다. 지난달엔 지하철 5호선 마장역 인근에 신관도 열었다.

메뉴는 등심 안심 채끝 안창살 업진살 제비살 토시살 등을 부위별로 선택할 수 있다. 100g 기준 2만~3만원대다. 안심부터 등심, 부채살, 양념 갈비살 등을 순서대로 골고루 맛볼 수 있는 ‘맡김차림 메뉴’도 있다. 1인당 9만원이다. 40여 종의 와인을 비롯해 싱글몰트 위스키, 칵테일, 고급 소주, 맥주 등도 판매한다.

김보라/안효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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