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춰선 산업용 장비 > 중·장기 경제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설비투자가 올 1분기 10.8%(전분기 대비) 감소했다. 1998년 1분기 이후 21년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25일 경기 시흥시 한국기계유통단지 인근 주차장에 일감을 찾지 못한 지게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 멈춰선 산업용 장비 > 중·장기 경제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설비투자가 올 1분기 10.8%(전분기 대비) 감소했다. 1998년 1분기 이후 21년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25일 경기 시흥시 한국기계유통단지 인근 주차장에 일감을 찾지 못한 지게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 경제가 ‘성장 쇼크’에 빠졌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속보치)은 전 분기 대비 -0.3%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3.3%) 후 10년3개월 만의 최저치다. 투자, 소비, 수출 등 3대 성장엔진이 비틀거리고 있다. 그간 경제를 낙관하던 정부도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고 시인했다.

10년來 최악 성장…이래도 '소주성' 고집하나
정부가 2년 가까이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의 처참한 성적표가 나왔다는 분석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설계한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대사) 등은 대기업 위주의 수출 주도 성장은 양극화를 부추긴다며 가계소득부터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재정 투입으로 내수를 부양하면 소비가 늘고 내수시장이 커지는 선순환을 그릴 것으로 기대했다. 실업 증가, 내수 부진, 기업 투자 위축에도 이들은 “소득주도성장 효과가 곧 나타난다”는 말만 반복했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없는 상황에서 나온 성적표여서 전문가들은 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애초 시장에선 1분기 0.0~0.3%의 성장률을 예상했다. 설비투자와 수출이 꺾인 데다 성장을 지탱해오던 재정 투입 효과가 사라지자 경제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청와대와 정부는 “글로벌 경기 둔화 등 외부 변수 탓이 크다”고 하지만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경제의 중장기 활력을 가늠하는 설비투자가 10.8% 감소한 게 단적인 사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분기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이날 성장률 발표 이후 시장의 투자심리가 악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2년3개월 만에 달러당 1160원대를 넘어섰다. 채권 금리도 급락해 성장 둔화 우려를 반영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최저임금 인상 등 시장경제에 반하는 정책을 쓴 결과가 1분기 마이너스 성장으로 나온 것”이라며 “정부 정책의 틀을 시장 친화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경제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기업의 창의성과 자율을 존중하는 정책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투자·수출·소비 '트리플 추락'…경제 '성장엔진' 모조리 식었다

“기업에 투자해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낙수효과는 한계가 확인됐다. 순서를 바꿔 사람에게 투자하겠다.”

2년 전인 2017년 4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차기 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이 될 ‘제이(J)노믹스’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기업의 투자 확대는 더 이상 고용창출 확대나 성장동력으로 작용하지 않는 만큼 과거와 같은 육성 정책을 펼치지 않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오히려 대기업을 규제 대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이때 한층 구체화됐다. 하지만 2년 만에 나온 경제 성적표를 보면 기업 투자를 경시한 대가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수출 고용 소득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뒷걸음질치면서 경제 전반의 성장동력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10년來 최악 성장…이래도 '소주성' 고집하나
1년째 얼어붙은 설비·건설투자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0.3%)은 2008년 4분기 이후 41분기 만에 최저 수준이다. 가장 큰 이유는 투자 부진이다. 1분기 설비투자 감소율은 무려 10.8%에 달했다. 1998년 1분기(- 24.8%)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기계류와 운송장비 등 주력 제조업종의 투자가 크게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1분기 성장률 -0.3%에 대한 기여도를 봐도 설비투자는 -0.9%포인트에 이르렀다. 전분기 대비 설비투자만 제자리를 지켰어도 0.6%가량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건설투자도 0.1% 감소하며 부진을 이어갔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이미 얼어붙기 시작했다. 지난해 2분기부터 4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 그럼에도 이번 1분기와 같은 성장률 하락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수출이 제품 가격 급등에 힘입어 호황가도를 달렸기 때문이다.

민간 소비도 지난해에는 분기별로 0.5% 안팎의 증가율을 보여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는 이 기간에 경제체질 개선, 미래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산업 구조조정 등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기보다 재정지출을 통한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데 골몰했다. 민간의 경제활력을 북돋우기보다 땜질식 재정 집행으로 자원배분의 효율을 스스로 그르쳤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성장동력인 수출이 꺾이자 그동안 산업 전반에 드리웠던 불안요인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다. 반도체 가격 하락 등의 여파로 수출 증가율(-2.6%)은 5분기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민간소비(0.1%)는 12분기 만에, 정부소비(0.3%)는 16분기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497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전년에 비해 11.6% 증가했다. 경직적 규제와 친노동정책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국내 대신 해외로 투자처를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조업 외면, 탈원전도 악영향

업종별로 1분기 성장률에 가장 악영향을 미친 분야는 제조업이었다. 1분기 제조업 총생산은 -2.4% 감소했다. 2009년 1분기 이후 10년 만에 최저 수준이었다. 전기가스 및 수도사업도 -7.3%로 뒷걸음질쳤다. 탈원전 등의 여파로 전력 판매량이 줄면서 한국전력 등이 대규모 적자로 돌아선 영향이다. 건설업은 주거용 건물 건설과 토목 건설 등이 줄면서 0.4% 감소했다.

제조업과 건설업이 부진한 동안 서비스업은 4분기 만에 최대폭인 0.2% 성장했다. 그러나 GDP 감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체 GDP 증가율 -0.3%를 업종별 기여도로 나눠보면 서비스업은 0.9%포인트였다. 제조업이 -2.4%포인트, 건설업이 -0.4%포인트로 발목을 잡았다.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교역조건 개선으로 전기 대비 0.2% 좋아졌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0.6% 나빠졌다.

고경봉/오상헌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