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가계 대출을 할 때 고정금리로 받는 비중이 올 들어 크게 늘고 있다. 2016년 말 이후 3년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낮은 ‘역전 현상’이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데 따른 변화다. 당장 눈에 보이는 금리가 낮은 고정금리 상품에 차입자들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은행에 고정금리 비중 확대를 주문하고 있어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심화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부작용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동금리보다 낮아진 고정금리…대출비중 '역전'
변동금리보다 낮은 고정금리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신규 취급액 기준)에서 고정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월 44.3%로 집계됐다. 2016년 10월(45.7%) 이후 최고치다. 2018년 2월 24.3%에 비해 1년 새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달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됐다. 한 시중은행의 지난달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 비중은 역대 최고 수준인 52%를 돌파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의 지난달 고정금리 비중은 2010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낮아지면서 대출 행태가 바뀌고 있다”며 “지난해 말 증시 급락 후 변동성에 대한 공포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22일 고정금리에 해당하는 혼합형(5년간 고정금리 적용 후 변동금리 전환)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연 2.72~4.22%로 적용했다. 매달 금리가 바뀌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연동 금리는 신규취급액 기준 연 3.16~4.66%, 잔액기준 연 3.39~4.89%로 책정했다.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대출 상품 간 금리 차이는 최고금리를 기준으로 0.67%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신한은행의 혼합형 상품도 연 3.02~4.13%로 신규취급액 기준 변동금리 연 3.29~4.64%, 잔액 기준 변동금리 연 3.32~4.67%보다 낮다. 우리은행은 혼합형 금리를 연 2.97~3.97%로 정했다. 변동금리(신규 연 3.34~4.34%, 잔액 연 3.42~4.42%)와 차이가 크다.

변동금리보다 낮아진 고정금리…대출비중 '역전'
급변하는 대출행태…부작용 없나

이 같은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대출 간 ‘금리 역전 현상’은 이례적이다. 통상 은행에서 취급하는 고정금리는 변동금리보다 높다. 고정금리는 만기가 긴 5년짜리 금융채(AAA 신용등급)를 기준으로, 변동금리는 시중금리 움직임을 반영하는 코픽스와 연동된다. 채권 만기가 길면 금리가 높아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오히려 떨어졌다. 반면 코픽스는 작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 인상 기대로 크게 올랐다.

금융당국도 이런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은행권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48%까지 늘리라고 주문했다.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지면 금리 상승기에 가계가 받는 여파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각에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최근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데다 국내 경기도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2014년에도 고정금리 상품 비중을 3년 내 40%까지 늘리도록 목표치를 정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가 떨어지면서 고정금리로 대출한 차입자들이 손해를 봐야 했다. 한 시중은행장은 “이미 고정금리 수요가 충분한 만큼 당국이 기준을 정하기보다는 소비자 선택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지은/정소람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