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을 통해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선 세계 최대 업체로 성장했지만 비메모리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1992년 처음으로 D램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한 뒤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2018년 기준 삼성전자의 D램과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각각 42.8%, 38.5%에 달했다. 반면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하는 품목은 없다.
60% vs 4%…한국은 반도체 강국 아닌 '메모리 강국'
SK하이닉스도 2004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설계와 파운드리(수탁생산)를 담당하던 매그나칩반도체를 매각했다. ‘투자를 분산하면 메모리와 비메모리 둘 다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약 60%에 달했지만 비메모리 반도체는 4.1%에 머물렀다.

반도체 업계에선 호황과 불황의 폭이 큰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상대적으로 경기를 타지 않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 기술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를 통해 ‘소품종 대량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제품 종류가 8000개에 달하는 비메모리 시장은 공략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설계 분야는 경험 있는 ‘천재급 인재’들이 달라붙어 혁신을 이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인력과 자원도 한정돼 있었다. 삼성전자는 ‘캐시카우’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인력을 메모리 사업부로 이동시키곤 했다. 시스템LSI 분야 투자도 뒷전으로 밀렸다.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우수한 인재들이 빠져나간 이유이기도 하다. 윗사람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대기업 구조상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혁신적인 설계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전략적으로 스마트폰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제품에 관심을 두긴 했다. CMOS 이미지 센서(2002년)와 모바일 AP(2010년) 시리즈 개발이 대표적이다. 각각 소니와 퀄컴에 이어 시장 점유율 2위로 성장했다. 하지만 회사의 모든 역량을 시스템 반도체에 투자하는 인텔, 퀄컴, 엔비디아 같은 회사와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선 변화의 모습도 감지되고 있다. ‘사이클’에 의존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비메모리 부문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30년까지 메모리에 이어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도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AP·이미지센서 경쟁력 강화 △차량용 반도체 개발 확대 △파운드리 선두인 대만 TSMC 추격 등 핵심 전략을 수립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