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털 서비스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렌탈협회가 추산하는 국내 렌털업체는 2만4000여 개. 시장이 커지는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국내 렌털산업은 1970년대 건설 분야에서 고가의 산업용 기계 장비나 포클레인 등 토목건설 장비를 임대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생활가전과 가정용품, 자동차에 이어 각종 소비재로 확대되는 추세다. 수천만원짜리 차와 TV 등 내구재까지 빌리는 게 더 이상 어색한 일이 아니다.

최근 등장한 렌털 상품 중 눈길을 끄는 것은 400만원대 프리미엄급 다리미. 스위스 로라스타의 제품이다. 스팀 및 살균 기능이 있어 전문가들이 주로 썼지만 이제 월 2만원대에 빌릴 수 있다. 수요를 예측하기 힘든 데다 사후관리(AS)가 어려워 국내 진출을 주저하던 수입 명품 가전업체들도 국내 렌털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국내 렌터카 1위인 롯데렌탈은 렌털 플랫폼인 ‘묘미’에 기발한 렌털 패키지를 내놨다. 유축기와 젖병소독기, 아기침대, 장난감 등을 한데 모아 빌려주는 ‘출산 100일 렌탈 패키지’.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애완동물 유모차, 이동장, 캣타워 등으로 구성된 ‘반려동물용품 패키지’도 눈길을 끈다. 세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일일이 구입하는 것보다 묶어서 한꺼번에 렌털하면 최대 67% 저렴하다. 롯데렌탈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스토케 유모차 등 고가 소비재를 많이 찾는다”며 “중장년층 남성 고객이 많은 것도 특이한 점”이라고 분석했다.

예술 작품 시장에도 렌털 개념이 도입됐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오픈갤러리가 하고 있는 미술품 렌털도 인기다. 큐레이터가 소비자의 집 분위기에 맞춰 국내 작가의 작품을 골라 3개월 단위로 대여해 주는 서비스다. 부담 없는 가격에 ‘작은 사치품’으로 집안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후발업체들도 가세할 태세다.

애완견, 식물정원, 화분, 수족관까지 잠시 빌려 쓰는 게 가능해졌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강아지나 고양이를 단기간 빌리는 가정도 늘었다. 3박4일 대여 시 가격은 7만원 선이다. 최고급 요트도 렌털 대상이다. 메리어트인터내셔널 계열사 리츠칼튼호텔 컴퍼니는 미쉐린 3스타 셰프의 동승을 비롯해 고급 스파, 펜트하우스 등의 서비스가 가능한 요트를 렌트해 준다.

렌털시장이 이처럼 커지는 가장 큰 요인은 역설적이게도 불경기다. 경기침체를 먼저 겪은 일본 등에서도 렌털은 호황이다. 예전엔 물건을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신제품과 신기술이 하루가 멀게 등장하면서 소비 시간은 줄고 여러 제품을 쓰고 싶은 욕구는 커지고 있다. 1~2인 가구가 늘고, 세계적인 공유경제의 흐름도 시장을 키우는 유인이다.

기업으로서도 렌털사업은 매력적이다. 초기엔 관리인력 구성 등에 비용을 많이 투자해야 하지만 일단 소비자를 확보하면 다른 제품을 연계해 팔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3~4년 뒤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출 수 있다. 렌털 누적 계정 590만 개로 국내 1위인 웅진코웨이는 지난해 매출 2조7073억원, 영업이익 5198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쿠쿠홈시스와 청호나이스, SK매직, 교원, 현대렌탈케어 등도 렌털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