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노사 합의 임금체계 부정"
기업들이 ‘통상임금 리스크’에 떨고 있다.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 통상임금 소송에서 지면 막대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탓이다. 여기에 현대자동차 노조처럼 소송에서 지고도 통상임금 미지급분 지급을 임금 및 단체협상 요구 조건으로 내거는 노조도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호한 통상임금 기준…판결도 제각각

14일 재계와 법원 등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만도, 현대미포조선, 금호타이어,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등이 통상임금 판결을 앞두고 있다. 기업들이 통상임금 판결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건 2012년 대법원이 금아리무진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다. 이 판결 이후 주요 기업 노조들이 앞다퉈 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전까지 고용노동부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통상임금은 초과근로수당과 연차휴가유급수당 등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기본급만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느냐 또는 상여금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지급해야 할 수당 규모가 달라진다. 기본급이 적은 대신 상여금이나 수당이 많은 임금 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초비상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하면 3년치 미지급분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는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소한 직후인 2017년 3분기 9800억원 규모의 충당금을 쌓기도 했다.

기업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사 합의로 만든 임금체계를 부정하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통상임금으로 봐야 할지 모호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논란이 커지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12월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기준을 제시했다. 정기적으로 지급했는지(정기성), 일정 요건을 갖추면 무조건 지급했는지(일률성), 재직 및 퇴직 여부에 관계없이 지급했는지(고정성) 등을 충족하면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내용이었다.

통상임금 미적용분을 소급해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제시했다. 회사가 미지급금을 일시에 지급했다가 경영상 위기에 빠질 상황이면 지급 의무를 면제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대법원이 새 기준을 내놨지만 현장에서의 혼란은 여전하다.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할 때 소송 대상이 되는 기간 외에 기업의 현재나 미래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 아니면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줘야 한다는 게 최근 법원의 기류”라며 “경기침체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규제 등 각종 악재와 싸우고 있는 기업들이 통상임금 소급 지급이라는 폭탄까지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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