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폐질환으로…향년 70세

1974년 대한항공 입사 이후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 이끌어
'수송보국' 창업주 유훈 실천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1949 ~ 2019)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1949 ~ 2019)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0시16분(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70세.

한진그룹 관계자는 이날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폐질환 치료를 받았다”며 “수술을 받아 회복하던 차에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사내이사직 박탈의 충격과 스트레스 등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반대 속에 사내이사 재선임에 실패했다. 1999년부터 20년간 맡았던 대한항공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큰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둘째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이 조 회장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은 “조 회장을 한국으로 모셔오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며 “통상 4~7일 정도 걸리지만 최대한 절차를 단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선 조 회장이 항공업 발전 등 경제에 기여한 공이 크다며 애도했다. 그는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정비, 자재, 기획, 영업 등 주요 업무를 경험한 뒤 1992년 사장에 올랐다. 2003년부터 창업주이자 부친인 고(故) 조중훈 회장의 뒤를 이어 한진그룹 회장을 맡았다.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일념으로 올해 창사 5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6년부터 ‘항공업계의 유엔’으로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국제 항공업계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2009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1년10개월 동안 약 50차례 해외 출장을 다니며 각국에 지지를 호소한 끝에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늘길 개척 '45년 비행' 마치다…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타계

45년 항공 외길…'위기속 투자'로 글로벌 대한항공 일군 '승부사'

8일 숙환(폐질환)으로 타계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이후 45년 동안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기업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쉼없이 뛰었다. 그가 몸담은 동안 대한항공은 화물 기준 세계 5위, 여객 15위의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했다. 조 회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 등을 맡아 민간 외교관으로도 활약하며 국익과 국격 향상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자녀들의 ‘갑질 파문’과 대한항공 등기이사 연임 실패 등은 그의 인생역정에 오점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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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에서 병장으로 만기 제대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와 김정일 여사 사이의 4남1녀 중 장남이다. 조 회장은 경복고에 입학한 직후 ‘선진 지식을 익히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학을 떠났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쿠싱아카데미(기숙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인하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 석사, 인하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 강원도 7사단 수색대에 입대했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돼 11개월간 복무하기도 했다. 이후 강원도 비무장지대로 복귀해 1973년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부친은 조 회장을 비롯한 자녀들에게 인성에서는 검소와 성실을, 일에서는 ‘프로 의식’을 강조했다. 조 회장은 고교 졸업 직후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갈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3000달러 가운데 1500달러를 남겨 돌려드리기도 했다. 하루 2~3달러짜리 싼 숙소를 찾아다니며 비용을 아낀 덕분이다.

조 회장은 부친으로부터 취미도 물려받았다. 사진촬영이다. 평소 해외 출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달력을 제작해 지인들에게 선물해왔다. 아버지가 해외 출장 때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사진에 관심을 두게 됐다.

‘수송보국’에 일생 바쳤지만…

조 회장은 대학 졸업 직전 대한항공에 입사해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정보기술(IT), 영업 등 다양한 실무 분야를 거쳤다. 18년 동안 경영 수업을 받은 다음 1992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부친이 별세한 이듬해인 2003년 한진그룹 회장이 됐다.

조 회장은 경영하면서 마주친 많은 위기를 과감한 투자와 리더십으로 돌파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회사가 보유한 항공기를 매각 후 재임차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2001년 미국 9·11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 등의 여파로 다른 항공사들이 움츠러들었을 때 조 회장은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에어버스 A380, 보잉 787 등 대형 항공기 구매 계약을 맺기도 했다.

조 회장은 2000년 델타·에어프랑스 등과 국제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하면서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 대열에 올려놓았다. 스카이팀은 19개 회원사가 175개국 1150개 취항지를 연결하는 대표적 항공동맹체로 성장했다.

대한항공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었던 항공기는 166대로 늘었다. 국제선 노선은 일본 3개 도시에서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연간 수송 여객은 38배, 화물은 538배 뛰었다. 매출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늘어났다.

민간 외교사절로도 활약

조 회장은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지위 향상에도 힘썼다. 그는 ‘항공업계의 유엔’으로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2014년부터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로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런 조 회장의 노력은 서울이 올해 사상 처음으로 IATA 연차총회(6월 1~3일) 개최지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포츠를 통한 민간 외교에도 적극적이었다. 2009년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위원장으로 일한 1년10개월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110명 중 100여 명을 만나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지구 16바퀴 거리인 64만㎞를 이동했다.

‘갑질 파문’에 얼룩진 말년

조 회장의 인생엔 굴곡도 많았다. 아버지가 설립한 한진해운을 살리지 못한 것은 그가 크게 아쉬워한 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선임됐다가 2년 만에 정부 압력으로 물러난 것도 조 회장에게는 씁쓸한 기억이다.

결정적 타격은 가족들의 ‘갑질 파문’이었다. 2014년 큰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둘째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물컵 갑질’로 사회적 공분을 샀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도 직원 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 회장 자신도 배임·횡령·탈세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김재후/강현우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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