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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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70)이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병원에서 별세했다. 대한항공(25,400 +1.80%) 관계자는 "조 회장의 사인은 '폐질환'"이라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70)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44),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5),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36) 등 1남 2녀와 손자 5명이 있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CEO에 올랐지만, 지난달 27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외국인과 소액주주의 '반대'로 사내이사 연임이 좌절됐었다.

다음은 대한항공 입장 자료 전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4월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 회장은 서울에서 경복고등학교를 수학한데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美 메사추세츠 주 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인하대 공과대학 학사, 美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 담은 이래로 반세기 동안‘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또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제고하는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망을 높이며 사실상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그는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 같은 경험은 조 회장이 유일무이한 대한민국 항공산업 경영자이자, 세계 항공업계의 리더들이 존경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조 회장은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대한항공에 몸을 담은 이래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 무한 경쟁의 서막을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 주도로, 그리고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결국 대한항공은 결국 이들 위기를 이겨내고 창립 50주년을 맞을 수 있었다.

조 회장은 탁월한 선견지명의 혜안으로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으며,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또 이라크 전쟁, 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조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2008년 7월 진에어(16,000 +1.91%)(Jin Air)를 창립했다. 진에어는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 대한민국 항공시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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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166대로 증가했으며, 일본 3개 도시 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이와 같은 도전과 역경, 성취와 도약의 역사가 담긴 대한항공의 여정에는 조 회장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다.

조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데도 힘을 쏟았다.

조 회장은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간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이 외에도 조 회장은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조 회장이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성사시킨 것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한국도 세계적인 문화 사업에 후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국가적인 위상도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조 회장은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토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열정을 쏟았지만, 만사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들의 잇따른 오판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이에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조 회장은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2014년 한진해운 회장직에 오르고,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도 출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방위 노력은 채권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됐다. 육·해·공 글로벌 물류 전문 기업의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부당한 외압에 의해 타의로 물러난 것도 마찬가지다. 조 회장은 정부로부터 “물러나 주셔야겠다”는 사퇴 압력을 받고 2016년 5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올림픽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을 걱정했다. 조 회장은 조직위에 파견된 한진그룹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외부 환경에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당당하고 소신껏 행동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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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조 회장은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국민연금이 절차 논란 속에서 연임을 반대했고,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연임 반대를 위해 조 회장을 흔들었다. 대한항공이 14분기 연속 영업흑자를 기록하는 등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가운데 내려진 안타까운 결과였다.

조 회장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고객, 그리고 고객들을 위한 안전과 서비스였다. 본인을 챙길 겨를 없이 모든 것들을 회사를 위해 쏟아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열정과 헌신은 대한항공이 지금껏 성취했던 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

조 회장은 평생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조 회장이 만들어 놓은 대한항공의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쉬며 대한항공과 함께 할 것이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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