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이어 경제 관계도 '난기류'

日, 통관·대금결제 등 깐깐해져
'韓기업 표적 세무조사' 소문도
국내에선 日제품 불매 목소리
< 서로 다른 곳 바라보는 한·일 정상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7년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연단에 올라 어색하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서로 다른 곳 바라보는 한·일 정상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7년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연단에 올라 어색하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적 갈등이 경제계로도 확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교역 규모가 850억달러(3위)에 달할 만큼 경제적으로 긴밀한 양국 관계가 계속 삐걱대면 두 나라 모두 큰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악 치닫는 韓·日 갈등…결국 기업에 '불똥'

7일 한·일 재계에 따르면 작년 11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들이 통관 및 결제 지연 등 크고 작은 피해를 보고 있다. 지방의 한 금속가공업체는 올 2월부터 일본 거래업체로부터 대금을 한 달씩 늦게 받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10년 넘게 거래하고 있는데 입금 지연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거래처가 ‘한국에 경고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메시지를 들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일본 내 한국 지사 상당수도 “무역 및 본국 송금 작업이 복잡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주요 공항과 항만에서 요구하는 통관 서류가 평소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고, 건별 심사 역시 깐깐해졌다는 전언이다. 대기업의 한 일본법인장은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일했지만 지금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국세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본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A사장은 “최근 한국인이 사장인 중소기업 중 1000만엔 넘는 추징금을 받은 업체도 있다”고 했다. 김정수 주일한국기업연합회 회장은 “한국 기업인들은 날마다 나빠지는 분위기를 체감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도 ‘전범(戰犯) 기업’ 꼬리표가 붙은 미쓰비시 등 일본산 제품의 불매 운동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초·중·고교가 보유한 일본산 비품에 ‘전범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부착하는 조례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일이 서로 보복하기 시작하면 두 나라 모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악 치닫는 韓·日 갈등…결국 기업에 '불똥'

日, 韓기업 세무조사·입금 지연…외교 파열음에 신규거래 '차질'

“과거엔 한·일 갈등이 불거져도 양국 경제계는 물밑에서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지금은 일본의 재계는 물론 지한파(知韓派)들조차 냉담한 반응을 보여 걱정입니다.”(A경제단체 회장)

정치권에서 시작된 한·일 갈등이 경제 분야로 확산하면서 기업인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잇따라 경고한 ‘경제 보복’이 가시화할 조짐을 보여서다.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에 따른 타격은 한국 쪽이 더 클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일본 ‘경제보복’ 가시화하나

지난달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언급한 뒤 일본 공무원들이 ‘손타쿠(忖度·윗사람 마음을 헤아려 행동하는 것)’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또 일본제철(옛 신닛테쓰스미킨),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대표 기업들이 ‘전범기업’으로 불리며 한국 여론의 타깃이 된 만큼 일본 재계가 반한(反韓) 전선을 공동 구축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일본과의 일상적인 무역 거래에서마저 송금 지연이나 서류 보완 지시가 급증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주요 한국 기업의 일본 내 신규 거래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교수는 “한국은 미국, 중국 다음으로 큰 일본 제품 구매자이지만 한국 업체와 비슷한 조건을 내건 외국 기업이 나타나면 지금 분위기에선 한국 대신 제3국 업체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NHK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은 징용피해자 판결 후속조치가 나올 때마다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야후재팬 등 온라인상에 공개된 한국 관련 뉴스에는 ‘한국과 단교하라’ 등의 댓글이 수천 개씩 붙고 있다.

일본산 첨단 소재·부품 조달 차질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은 삐걱대는 한·일 관계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공장 가동에 필수인 일본의 첨단 부품·소재를 조달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 있어서다.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생산 공정에 쓰이는 촉매 기술을 일본이 보유하고 있어 관련 기술을 수입할 때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촉매는 저부가가치 원료를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바꾸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술을 바탕으로 공장을 지었다면 촉매도 일본 기술이 들어간 것을 사용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강제로 기술 공급을 중단하면 국내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걱정했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화학 소재도 ‘약한 고리’다. 전자정보소재 기업들이 일본으로부터 원료를 수입하지 못하면 생산 문제로 직결된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우려도 작지 않다. 캐논토기 등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정의 필수 부품을 공급하는 일본 업체 의존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역대 최악인 한·일 관계가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도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르노삼성은 일본 닛산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를 수탁 생산하고 있다. 닛산은 지난달 연간 위탁물량을 종전 10만 대에서 6만 대로 줄였다. 닛산이 내건 공식적인 이유는 부산공장의 노사갈등이지만, 일각에선 악화된 한·일 관계 탓도 있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위탁계약이 끝나는 오는 9월 이후 어떤 물량을 맡길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르노와 동맹관계인 닛산이 끝까지 반대하면 부산공장에서 닛산 차량을 수탁 생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꽉 막힌 물밑 대화…경제 교류 ‘스톱’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회사가 합병하려면 각국 정부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특히 일본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 경제인 간 교류는 ‘일단 멈춤’ 상태다. 다음달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일경제인회의는 돌연 9월 이후로 연기됐다. 한일경제인회의는 양국 최고경영자 300여 명이 참석하는 교류의 장으로 1969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주로 정치 차원에서 논의되던 다양한 한·일 문제가 경제 및 민간 교류로 전이되고 있어 걱정된다”고 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조재길/황정수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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