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부터 은행이 점포를 폐쇄하려면 취약계층의 금융접근성을 따지는 사전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자동화기기(ATM) 등 대체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또 점포를 많이 폐쇄한 은행은 금융당국의 경영실태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제도가 도입된다. 은행들의 잇단 점포 폐쇄로 금융소비자 불편이 우려된다는 금융감독원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일부에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온라인 등 비(非)대면 채널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치라는 지적이다.

핀테크 시대인데…은행 점포 유지하라는 금감원
윤석헌 “점포 폐쇄 시 소비자 피해”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이달 은행 점포 폐쇄 절차에 관한 공동협약을 발표할 계획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감원 및 회원사와 협약에 들어갈 세부 내용을 두고 최종 합의를 끝냈다”며 “다음달부터 은행권에 공동협약에 담긴 내용이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은행 점포 폐쇄 절차 관련 모범규준 도입을 추진해왔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지난해 7월 발표한 금융감독 혁신 방향의 핵심과제 중 하나다. 당시 윤 원장은 은행들의 무분별한 점포 폐쇄로 고령층 등 금융취약계층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연내 모범규준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은행들이 ‘과도한 경영개입’이라고 거세게 반발하면서 모범규준 도입은 미뤄져왔다. 은행들은 인터넷과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점포 폐쇄 및 통폐합은 불가피하다고 반발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은행연합회와 논의를 거쳐 모범규준보다 한 단계 낮은 공동협약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협약에는 ‘지점 폐쇄 결정권한이 전적으로 개별 은행에 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이 붙었다. 우선 은행들은 점포를 폐쇄하기 전 금융소비자에게 미치는 사전영향평가를 시행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되면 디지털 키오스크나 ATM 등 대체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점포 숫자를 유지하는 은행에는 경영실태평가 시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특정 지역의 인구 1000명당 점포 수를 기준으로, 점포 수가 많은 은행에 가점을 주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지방자치단체 금고 선정 시 은행 점포 숫자에 대한 평가 배점을 대폭 높이는 방안도 마련했다.

“4차 산업혁명에 역행” 지적도

금감원은 은행들이 공동협약을 이행하는 정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는 계획이다. 은행들의 협약 이행 수준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 다시 모범규준으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관계자는 “이번 공동협약이 겉으로는 은행들의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사실상 점포 폐쇄를 가로막는 규제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19개 은행의 점포는 2017년 6791개에서 지난해 말 6771개로 20개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국내은행의 비대면 거래 비중은 90%에 달한다. 비대면 채널 확대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점포 폐쇄를 못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공동협약까지 시행되면 은행 점포 폐쇄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은행권은 판단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정부가 단순히 점포 숫자 등의 양적 평가에만 치중한다면 디지털금융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