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기자의 알쓸커잡
(40) 美 아이비리그 장악한 시루카페
日 시루카페 "커피값 대신 이력서 받아요"

졸업한 뒤에도 한동안 학생증을 못 버렸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여행갈 때 학생증 하나만 있으면 박물관, 영화관이며 심지어 옷값까지 깎아준다는 사실 때문이었지요. 따지고 보면 푼돈인 데다 반칙인 것도 알았지만 그땐 공돈의 짜릿함에 중독됐던 것 같습니다. 뭐 이제 양심상, 외모상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학생증=할인증’으로 통하던 때에도 안 먹히던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커피값입니다. ‘학생 할인’이 없던 카페 문화에 정면으로 도전한 곳이 있습니다. 일본의 시루카페(사진)입니다. 시루카페는 2014년 교토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엔리션(ENRISSION)이 선보였습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공짜 커피를 즐길 수 있습니다. 단, 커피 주문대에 있는 태블릿PC에 학교 이름과 이메일, 졸업 예정 연도와 전공 등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면 됩니다. 입력한 뒤로는 2시간마다 커피 1잔씩 제공되고, 디저트 빵까지 즐길 수 있답니다. 메뉴는 디카페인, 콜드브루, 핸드드립, 니트로 커피, 라테 등 다양하고 테이크아웃도 되지요.

커피값을 내는 건 누구일까요. 시루카페의 스폰서 회사들입니다. 이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신입 사원을 뽑고 싶은 기업들이 해당 지역 시루카페 지점에 커피값을 내는 대신 대학생들의 이메일과 전공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채용이 있을 때마다 단기 계약을 하기도 하고, 장기 계약을 하기도 합니다. 시루카페의 바리스타들은 커피를 건네면서 “지금 H회사가 B전공의 사람들을 뽑고 있다”는 식의 정보를 주기도 하고, 매장 내 모니터나 컵에 채용 광고가 나오기도 합니다. 시루카페는 일본과 인도 대학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20여 개 지점을 냈고, 50개 기업을 스폰서로 확보했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닛산, JP모간 등이지요.

시루카페는 지난해 미국 대학가에도 진출했습니다. 첫 매장은 브라운대 지점으로 정했고,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예일대 등에도 매장을 열 계획이랍니다. 브라운대 지점은 문을 연 지 3개월 만에 전체 학생 중 76%가 등록했다고 합니다. 시루카페 전체 네트워크에는 하루 평균 2500명의 대학생 구직자 데이터가 올라옵니다. 전 세계 누구나 즐기는 커피, 인재에 목마른 기업들, 커피와 구직에 갈증을 느끼는 학생들이 어우러져 혁신적인 모델이 된 것이죠.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은 교수님이라면? 대학 관계자들에겐 1달러에 커피를 판다고 합니다.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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