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이 좋지 않아도 기술력과 성장잠재력이 높다고 평가한 중소기업에 자금을 대주는 기술보증기금이 설립 30년을 맞았다. 30년간 보증한 액수가 345조원이 넘는다. 기술금융이라는 영역을 개척해 국내 기술창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기사'·'배민' 뒤에는 기보가 있었다
기보가 처음부터 이런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1989년 설립 당시만 해도 기보는 신용보증기금과 비슷한 업무를 했다. ‘기술 보증’이라는 정체성을 찾은 건 1997년 3월 기술평가센터를 개소하면서부터다. 2005년 독자적인 기술평가 시스템을 만들고, 2007년에는 담보 위주의 낡은 금융 관행을 폐기했다. 대신 기업이 가진 기술로만 해당 업체의 사업성과 성장성을 평가한 뒤 보증해 줬다. 기보 관계자는 “아이디어나 특허·기술 같은 무형 자산을 토대로 기업 가치를 따져 지원을 했다”며 “일반 금융회사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기업이 주로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기술력과 잠재력을 갖춘 기업을 직접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기술기업 중 기보의 지원을 받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코스닥시장 상장기업 1351개 중 82.3%(1112개)가 기보의 보증 지원을 받았다.

경제위기 때는 중소·벤처기업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 해 동안 기보는 무역금융보증, 벤처특별보증 등 특별 보증을 연이어 시행해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던 기술기업을 지원했다. 1998년 한 해 기보의 지원 규모는 전년보다 두 배 많은 10조6818억원에 달했다. 2009년에도 전년보다 40% 많은 17조5700억원 규모의 보증을 지급했다.

‘김기사’나 ‘배달의민족’ 같은 서비스가 성장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김기사를 개발한 록앤롤은 제품을 출시한 이후에도 적자를 냈다. 기보는 2011년 설립한 지 1년, 매출은 5억원을 밑돈 록앤롤에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자금 1억원을, 2012년엔 사업 운영에 필요한 운전자금 3억원을 지원했다. 록앤롤은 2015년 지분 100%를 다음카카오에 626억원에 매각해 스타트업 성공신화를 썼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인 배달의민족 운영 업체 우아한형제들도 매출이 미미하던 2011년 두 번에 걸쳐 4억원의 보증을 받았다. 기보는 “1000억원 규모 벤처기업 572개 중 527개가 기보의 기술보증·평가지원을 통해 성장했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