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 덮친 'R의 공포'

글로벌 제조업 경기 급랭에 타격
글로벌 경기침체 신중론도 제기
미 국채의 장·단기 금리가 금융위기 이후 12년 만에 처음 역전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에 휩싸였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찾아 주식에서 채권으로 이동하면서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독일 국채 금리가 2016년 10월 이후 2년 반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세계 각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줄줄이 급락하는 등 침체 조짐이 깊어진 영향이 컸다. 미 중앙은행(Fed) 등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 선회도 일조했다.
경제지표 악화 속 12년 만에 美 장·단기 금리역전…'침체 시그널'에 떤다

지난 22일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장보다 7.8bp(1bp=0.01%포인트) 내린 2.459%로 마감했다. 작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장중 한때 2.428%까지 급락해 3개월물 수익률(2.453%)보다 2.5bp 낮아졌다. 통상 만기가 긴 채권은 불확실성을 반영해 금리가 더 높아져야 하는데, 10년 뒤 만기가 오는 채권이 지급하는 이자가 3개월 만기 채권보다 더 적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3개월물과 10년물 간 금리가 역전된 것은 2007년 8월 이후 처음이다. 다만 장 막판 3개월물은 10년물과 같은 2.459%에 마감됐다. 10년물과 2년물 격차도 장중 한때 2007년 이후 최저인 10bp 이내로 좁혀지기도 했다.

미국뿐 아니다. 이날 독일 10년물 국채수익률은 6.3bp 내린 -0.02%에 거래돼 2016년 10월 이후 다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일본 채권시장에서도 10년물 국채 금리가 4bp 하락해 -0.07%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0.8% 올랐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촉발한 1차 요인은 부진한 경제지표였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이 이날 발표한 독일의 3월 제조업 PMI 예비치는 44.7을 기록했다. 69 개월 만의 최저치로 예상치(48.0), 전월치(47.6)를 모두 밑돌았다. 유로존의 3월 합성 PMI 예비치도 51.3으로 예상(51.8)을 밑돌았다. 미국의 3월 마킷 제조업 PMI 예비치도 12개월 만의 최저 수준인 52.5로 예상(53.5)에 못 미쳤다.

나쁜 소식이 줄줄이 날아들면서 각국 증시가 폭락했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460.19포인트, 1.77% 떨어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90%, 나스닥지수는 2.50% 급락했다. 특히 이날 3개월물과 10년물 간 금리 역전 현상은 ‘R의 공포’를 키웠다. 단기보다 장기 금리가 낮아진다는 건 미래 성장 전망이 어둡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에 따르면 1955년 이후 한 번만 빼고 금리 역전은 1~2년 내 침체로 이어져왔다.

다만 이번 금리 역전 현상을 반드시 침체의 전조로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Fed 등 주요 중앙은행의 완화적 정책 선회에 영향을 받아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채 금리가 급락했지만 침체 징조가 없더라도 급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Fed는 지난 2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올해 금리 동결을 시사하고, 자산 축소 종료와 함께 주택저당채권(MBS)은 처분하고 대신 국채를 매입할 계획을 밝혔다. 향후 국채수요가 커질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미 재무부는 부채규모가 한도에 달해 국채 발행(공급)을 대폭 줄여야 하는 처지다. 이에 따라 10년물 국채 금리는 20~22일 2.61%에서 2.4%대 초반까지 급락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성장·고용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라며 “수익률 곡선 역전을 우려하지만 일시적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디스도 “미국의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침체 우려는 지나치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독일 국채 금리까지 마이너스로 전환돼 해외 투자자의 미 국채 수요가 더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런 현상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 미국 경제가 유럽 중국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기 때문이다. Fed는 지난 FOMC에서 미국의 올해 성장률을 2.1%로 예상했다. 이는 유럽중앙은행의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1.1%)의 두 배에 달한다.

자금 흐름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확인된다. 펀드평가회사 리퍼에 따르면 지난주 글로벌 채권펀드에는 북미에서 77억달러가 유입되는 등 세계적으로 121억달러가 순유입됐다. 11주 연속 순유입이다. 반면 주식형펀드에서는 유럽, 아시아, 신흥국 등에서 모두 돈이 빠졌다. 다만 북미에선 65억달러가 들어오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29억달러가 유입됐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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