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올해 추가 금리 인상이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보유자산 축소 프로그램도 오는 9월 말로 중단한다. 미 경기가 둔화 조짐을 보이자 ‘양대 긴축카드’를 거둬들인 것이다. Fed가 파격적인 통화 완화를 뜻하는 ‘슈퍼비둘기’로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Fed는 20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2.25~2.50%로 동결했다. 또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나타내는 점도표(dot plot)를 통해 올해 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작년 12월엔 올해 두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두 달 만에 크게 달라졌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탄탄한 성장세가 예상되지만 소매판매와 기업투자, 고용증가와 같은 지표가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Fed는 자산축소 프로그램과 관련해 오는 5월부터 감축 규모를 줄이고, 9월엔 아예 프로그램을 종료하기로 했다. 자산축소 중단은 시장 유동성을 더는 줄이지 않겠다는 의미다.


금리인상 전망 ‘2회→0회’로

2015년 10월 금리 인상을 시작한 Fed는 작년엔 네 번이나 올렸다.

Fed는 지난해 9월 FOMC에서 점도표를 통해 올해 3회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그러다 경기 둔화 우려로 작년 12월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2회 인상으로 줄였다. 이번엔 FOMC 위원 17명 중 11명이 올해 금리 동결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회의 전까지만 해도 한 차례 금리 인상 전망이 유지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Fed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골드만삭스는 “명백히 완화적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기 둔화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시에 지속되는 낮은 물가에 따른 안도감 등도 작용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Fed는 이날 성명에서 ‘둔화(slow)’란 단어를 여러 번 썼다. 그리고 올해 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을 기존 2.3%에서 2.1%로 낮췄고, 실업률은 기존 3.5%에서 3.7%로 높여 잡았다.

파월 의장은 “유럽과 중국 경제가 상당히 둔화했다”며 “이는 미 경제에 역풍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경기 풍향계’로 통하는 페덱스에 이어 20일엔 BMW, UBS,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이 올해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실적 악화 가능성이 있음을 줄줄이 경고했다.

유동성 축소도 조기 중단키로

Fed가 돈을 푸는 양적완화(QE)로 4조5000억달러까지 불어난 채권 등의 보유자산을 줄이기 시작한 건 2017년 10월부터다. 처음엔 순조로웠다.

하지만 작년 말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시장 불안의 주범으로 꼽혔다. 파월 의장은 작년 12월 FOMC 회의 때 “자산 축소 프로그램은 오토파일럿(자동항법장치)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적절한 수준에서 유동성 회수가 이뤄질 것이라는 의미였지만 시장 불안은 더 커졌다.

파월의 변심은 빨랐다. 한 달 전 올해 4분기 중 자산축소 종료를 시사했던 그는 이번에 종료 시점을 9월 말로 앞당겼다. 양적긴축(QT)에 들어간 지 정확히 2년 만이다.

Fed는 매달 500억달러 규모의 보유채권을 매각하고 있다. 국채 300억달러, 주택저당증권(MBS) 200억달러다. Fed는 당장 5월부터 국채 축소 물량을 300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줄인다.

Fed는 10월부터 금융위기 때 대량 인수한 MBS는 계속 줄이되 그 돈으로 월 200억달러까지 국채를 사들이기로 했다. 자산 구성을 국채 위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파월 의장은 “보유 자산은 약 3조5000억달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GDP의 17%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6년 Fed 자산은 GDP의 6% 선에 그쳤다.

美 국채금리 하락, 달러화는 약세

‘슈퍼비둘기’ Fed의 행보에 이날 뉴욕 채권시장에선 랠리가 벌어졌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7.7bp(1bp=0.01%포인트) 내린 연 2.537%로 작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30년물은 5.2bp 하락한 연 2.975%, 2년물은 6.9bp 떨어진 연 2.402%에 거래됐다. 국채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뉴욕증시는 발표 직후 상승했다가 Fed의 경제 전망 하향 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다우지수가 0.55% 내리는 등 하락 마감했다. 달러화도 약세를 보였다.

월가에선 Fed의 완화적 기조가 달러 유동성 유지 및 글로벌 금융시장 호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일각에선 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내년 1월 안에 금리를 내릴 확률을 43.7%로 추산했다. 전날엔 32.7%에 그쳤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