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구소장 맡고 있는 김우찬 고려대 교수 인터뷰
"국회 문턱 못 넘은 재벌개혁…상법 등 패스트트랙 필요"


"모든 기업은 경쟁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 경영자 시장에서는 창업자의 자손이 아버지,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경쟁 없이 그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오르고 있어요.

"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 소장 겸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1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재벌구조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김 교수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목소리를 내온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지배구조 분야 전문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재벌 문제를 두고 오랜 시간 한목소리를 내온 학문적 동료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창업주 일가가 장악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구조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창업자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지분이 희석돼 주주로서만 남고, 나중에는 그 주식도 없어져 회사와 관계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순리"라면서 "회사를 누가 운영할지는 경쟁을 통해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으로 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고조부가 창업주라고 해서 몇 대 후손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현재 국내 주요 대기업은 3, 4세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데 그나마 아버지 등 뒤에서 일을 배웠던 2세 경영시대보다 더 큰 문제가 터져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가 보는 한국 재벌의 또 다른 문제는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경제 길을 묻다] "모든 기업 경쟁하고 견제받아야 한다"
소액주주의 목소리는 묵살되기 일쑤고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감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지만, 김 교수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그는 "제대로 된 이사회도 없이 총수가 전횡을 휘두르는 기업에 비교하면 그나마 양호하다고 할 수 있지만, 국제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면서 "전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외국계 자본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 지분이 있는 외국계 자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무조건 '경영권 찬탈' 시도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2003년 'SK-소버린 사태'를 들었다.

영국계 사모펀드인 소버린은 2003년 3월 26일 SK 지분 매입에 나서 다음 달 16일 14.99%의 지분을 확보한 뒤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후보 추천과 정관 개정, 최태원 회장 퇴진 등을 요구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SK와 소버린 간 경영권 분쟁을 외국계 자본이 한국 기업을 탈취하려는 시도로 규정했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공개적으로 반대했을 때나 지난해 현대차·현대모비스 합병을 요구했을 때도 외국계 펀드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된 바 있다.

김 교수는 "그동안 한국에서는 어떤 외국계 헤지펀드도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들어온 적이 없었다"며 "주주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영자가 주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은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개방된 자본주의 시장에서 주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 길을 묻다] "모든 기업 경쟁하고 견제받아야 한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1월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긍정적 평가(A학점+B학점)는 50.5%로 지난해 7월 조사보다 13.8%포인트 감소했지만, 부정적 평가(D학점+F학점)는 17.5%로 9.4%포인트 증가했다.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점수가 박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한 것이 없다"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했다.

그는 "재벌개혁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상법, 공정거래법 등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에서 막혔다"며 "야당의 반대로 법이 통과하지 못했다면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의 마음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 실망스러운 점으로는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꼽았다.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해 7월 30일 주주권 행사 강화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결함으로써 국민연금의 제한적 경영권 참여를 허용했다.

김 교수는 "이번 정부의 재벌개혁 핵심 중 하나가 스튜어드십 코드였는데 도입 과정에서 '반쪽짜리'가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법령상, 유권해석 상 여러 제약조건이 있는데도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위원 선임에서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며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내년 총선을 위해 (재벌개혁보다는) 고용지표를 올리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바꾼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생기게 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 길을 묻다] "모든 기업 경쟁하고 견제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기대를 버린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절차)에 포함할 가능성이 있고, 이마저도 어렵다면 법 개정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한 후 어느 시점에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에 나설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고용지표를 올리기 위해 재벌개혁을 뒷전으로 미루지 않길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김 교수는 "고용은 기업의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재벌개혁을 안 한다고 해서 기업이 계획에 없던 고용을 늘리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재벌개혁을 한다고 해서 고의로 고용을 줄이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 길을 묻다] "모든 기업 경쟁하고 견제받아야 한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재벌개혁을 했을 때 일자리 지표도 좋아질 수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재벌개혁을 통해 배당, 자사주 매입이 활발해지고 자본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그 돈이 벤처 등으로 흘러가면서 혁신경제, 공정경제 또한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짧은 시야로 급한 불만 끄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소신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 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