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국정농단 당시 정경유착이 국민 재벌 인식에 치명타
국민의 64% "재벌 중심 경제성장정책 사회 불평등 심화시켜"


특별취재팀 = 삼성전자는 미국 유력 경제매체 '포천'(Fortune)이 최근 발표한 '2019년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공동 50위에 올랐다.

LG그룹의 지주회사인 ㈜LG는 미국 여론조사업체 해리스폴이 실시한 사회적 가치 실천 기업 평가에서 '글로벌 톱 20'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을 이끄는 총수 일가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한국경제 길을 묻다] 존경받는 재벌기업, 미움받는 총수 일가
17일 연합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2019년 재벌 및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벌에 대한 인식이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50.8%, '예전에는 긍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16.1%에 달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은 현재 재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재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다는 답변은 63.4%로 긍정(31.0%)의 두배가 넘었고, 현재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66.9%로 긍정(27.5%)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한국 재벌은 왜 국민에게 존경보다는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됐을까.

◇ 정부 지원과 국민 희생 속 성장한 재벌 논란의 중심
재벌기업은 과거 산업화시대 독재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민의 희생을 토대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산업화시대 정부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소수의 선택된 대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모든 자본과 노력을 집중했고, 그 결과 주요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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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조사에서도 재벌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응답자의 54.2%는 '재벌이 한국경제의 성장을 주도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의 반대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생겼다.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응답자의 25.7%는 '정경유착'을 그 이유로 꼽았다.

'편법승계'(23.6%), '갑질 행태'(18.9%), '불공정거래'(18.1%), '독단경영'(7.3%)이 뒤를 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보여줬듯 정경유착은 재벌주도형 성장의 부작용으로 뿌리 깊게 박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20일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은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한을 자신과 최순실 씨를 위한 사익추구에 남용했고, 청와대 '안가'라는 은밀한 공간에서 대기업 총수들과 서로 현안을 해결함으로써 정경유착의 전형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사회적 불평등 심화나 부의 세습도 재벌 주도형 성장이 낳은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전체 응답자의 49.5%는 재벌이 한국경제를 불균형하고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에 '예전에도, 지금도 공감한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공감하지 못했으나 현재는 공감한다'는 비율은 14.9%였다.

공감 비율은 과거 61.0%에서 현재 64.4%는 3.4%포인트 상승했다.

하도급 업체에 대한 갑질부터 총수 일가의 갑질까지 재벌기업의 갖가지 갑질 행태는 재벌에 대한 불신을 더욱 심화시켰다.
[한국경제 길을 묻다] 존경받는 재벌기업, 미움받는 총수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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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생강)를 충분히 사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문지방에 무릎 꿇게 하고, 운전 기사에게 물컵을 던진 조양호 한진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의 '갑질 폭행'이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등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CNN은 '일부 한국 대기업의 핵심에 있는 학대와 폭력의 문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기업과 정치를 지배하는 재벌 일가의 갑질이 전국적인 논란을 촉발했다"고 지적했다.

설문 응답자의 87.8%는 재벌의 갑질 행태가 '심각한 수준'('매우 심각함' 54.7%·'다소 심각함' 33.1%)이라고 평가했다.

모든 지역과 계층에서 재벌의 갑질 행태가 심각하다고 여겼고, 특히 광주·전라와 40대 이상, 여성,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진보층에서 심각하다는 답변이 90%를 넘어섰다.

반면 재벌이 사회환원 등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는 답변은 소수에 그쳤다.

전체 응답자의 79.4%는 '재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보수를 포함한 모든 지역과 계층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다수를 이뤘다.

◇ 재벌개혁 요구 목소리 높아…"전문경영인 도입"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당시 10대 공약 중 하나로 '반부패·재벌개혁'을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공약에서 재벌 그룹의 계열 공익법인이나 자사주 활용, 우회 출자 등을 통해 대주주 일가가 그룹 지배력을 강화해왔던 관행을 끊겠다고 밝혔다.

또 재벌 그룹의 공익재단이 총수 일가의 지배권 유지에 동원되지 못하도록 하고 재벌 그룹의 순환출자를 단계적으로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재벌 저격수'라고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국민 대다수는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응답자의 86.1%는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매우 필요함' 52.6%·'다소 필요함' 33.5%)고 생각했다.

모든 지역과 계층에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우세했고, 40대와 진보층, 광주·전라에서 필요 응답률이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는 응답자의 27.4%는 '정경유착 근절'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어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개선'(24.5%), '불법 가업 승계 금지'(18.5%), '불공정거래 근절'(17.7%), '재벌 일가 전횡 방지'(9.2%) 순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제 길을 묻다] 존경받는 재벌기업, 미움받는 총수 일가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와 재계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총수가 있는 곳은 포스코와 농협을 제외한 8개다.

지난해 들어서는 3·4세 경영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이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경영을 이끌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5월 30년 만에 삼성그룹의 총수(동일인)를 이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변경하면서 '총수 이재용 시대'가 공인됐다.

4세대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5월 선친인 고(故) 구본무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한 후 한 달 뒤 상무에서 회장으로 '직행'해 LG그룹을 이끌기 시작했다.

총수는 아니지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 총괄부회장의 경우 지난해 9월 부회장에서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2인자에 올랐다.

지난해 말 그룹 사장단 인사에서는 정 수석부회장 중심으로 조직 개편이 이뤄지면서 '정의선 체제'를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총수 일가의 경영 승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응답자 10명 중 8명(82.3%)은 기업경영을 총수 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고 봤다.

모든 지역과 계층에서 70% 이상이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고, 광주·전라와 진보층에서는 이 같은 응답률이 90%를 웃돌았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컸다.

현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질문에서 56.0%는 '현재보다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보다 약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20.4%, '현재처럼 하면 된다'는 18.8%였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 소장 겸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국회 반대를 이유로 아직 재벌개혁의 기본인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서 "한국법은 시행령에 위임한 것이 많은 만큼 어느 기점에서 시행령이라도 많이 바꾸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