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부터 영화 '용가리' 제작까지
마사회 최종 임무는 사회 공헌
국민신뢰 회복위해 할 일 할 것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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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없어요. 지금이 최고죠.”

그는 당시엔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잘사는 게 오히려 이상했던 시절이라고 했다. 가난을 미워하진 않았지만 공부를 못 했을 땐 한이 맺힐 정도로 원망스러웠단다.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마흔넷 나이에 그토록 원하던 대학 졸업장을 받았고 이후 대학 강단까지 오른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62) 이야기다.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남도음식점 다래간주에서 만난 김 회장은 겉만 보면 귀공자에 가까웠다. 이날도 날씬하면서 균형 잡힌 몸에 ‘노(老)신사 패셔니스타’ 닉 우스터를 뺨치는 은색 양복 ‘슈트핏’을 자랑하며 나타났다. “또 신파로 흐르니까 옛날이야기는 안 해야겠다”고 손을 내저은 그는 “생긴 거에 비해서 파란만장하게 산 건 사실”이라며 껄껄 웃었다.

‘조직통’으로 정치권에서 호평

다래간주는 서울 양천구을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김 회장에게 소위 ‘함바집’(공사장 밥집)과도 같은 곳이다. 그는 충남 천안에서 1977년 서울로 올라와 양천구에 터를 잡았다. 식당은 그가 서울 시의원이던 2001년에 생겼다. 우연히 들렀다가 전남 고흥 출신 사장의 손맛에 반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꾸준히 이곳을 찾았다. 식당이 신월동에서 신정동으로 이사했는데도 그는 잊지 않고 찾는 20년 가까운 단골이다.

점심 한상이 가득 차려진 가운데 상추를 들더니 찰나의 고민 끝에 그의 젓가락이 향한 곳은 숭어회. 얼핏 보기에도 두툼한 숭어회를 망설임 없이 두 점 집었다. “숭어회를 두 점 이상 넣어야 제대로 된 식감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초고추장 대신 된장과 고추장, 다진 마늘, 고추 등이 들어간 묽은 양념장을 넣는 게 쌈의 포인트다. “갑오징어무침도 맛있습니다. 얼른 드셔보세요. 이것만 있으면 소주 열 병은 금방이라니까요.”

맛의 단위가 소주병 수인 김 회장은 자신을 ‘조직통’이라고 칭했다. 신한민주당 중앙당 연수부장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이후 평화민주당 대통령선거대책본부 유세부위원장 등을 거쳤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본부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경험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직을 위해 일했지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예전에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는 전국조직위원장,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박원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도 했습니다. 뼈가 ‘조직통’ 뼈지요. 그래서 국회의원 떨어진 뒤에도 당이 나를 찾아준 것 같습니다.”

정치와의 인연은 넘치는 패기에서 시작됐다. 정치에 관심이 있던 김 회장은 김영배 전 국회부의장이 양천구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때 우연한 기회에 선거를 도왔다. 김 전 부의장의 눈에 띄었고 보좌관으로 스카우트됐다.

“지금도 젊은이들 중에 정치지향적인 친구들이 있는데 저도 정치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선거 때 영감님(김 전 부의장)을 도와드렸는데 제가 연설을 좀 했거든요. 바로 보좌관을 시키시더라고요. 그때 인연으로 저도 여기서 출마하고 당선됐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CG 괴수영화 제작…‘도전가’ 기질도

숭어회와 갑오징어무침 접시가 바닥을 보일 때쯤, 영화제작사 영구아트무비 대표이던 때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당시는 그가 수년간의 보좌관 생활을 끝낸 뒤 숨을 고르던 시기다. 젊은 시절 같이 음악밴드 활동을 하며 친해진 개그맨 심형래 씨와 함께 영화 제작에 나섰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용가리’. 한국 최초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도입된 괴수 영화였다. 완성도 면에서는 졸작이라는 평이 강했으나 영화가 나온 1999년에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용가리 제작비용으로 100억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썼다. 그중 많은 액수가 CG 기술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데 사용됐다. 김 회장은 필요할 때 부르고 끝나면 흩어지는 영화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영화 CG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가 있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영화사는 기업 구조가 아닙니다. 지금도 스태프를 한 번 모아 영화 찍고 다시 해산시키는 경우가 많죠. 그 구조 좀 깨보려고 고민했습니다. 또 (용가리에 이어) ‘디 워’에도 많은 CG 작업자가 필요했으니까요.”

김 회장의 시도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국내 영화 CG산업의 밑거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만 관객을 넘어선 ‘신과함께’와 ‘신과함께2’ 등은 모두 국내 회사의 CG 기술로 제작됐다. 한국의 영화 CG 기술은 아시아 최고로 평가받는다.

“결과적으로 우리 영화는 좋지 않은 평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 친구들이 할리우드 가서 ‘반지의 제왕’ 만들고 ‘트랜스포머’ 만들면서 잘하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성패만을 따지지만 우리는 업계에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의 도전정신은 정치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무보수 명예직임에도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서울시의원으로 활동할 때가 가장 보람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익숙해진 서울의 야간 조명과 한강 다리 조명 등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에 야간 조명이 없었어요. 1995년에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는데 센강을 보고 한강도 센강처럼 만들자고 결심했습니다. 한강은 밤이 되면 흉물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있기도 했고요. 제가 강하게 밀어붙인 덕에 22개 다리에 야간 조명을 달고 남산타워에도 조명을 설치해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마사회 이미지 쇄신 넘어 산업 성장 이룰 것”

김 회장의 숟가락이 걸쭉한 짱뚱어탕으로 향했다. 식사의 끝을 알리는 메뉴이자 이 식당 대표 음식이기도 하다. 그는 짱뚱어는 잡기 힘든 고기라며 식기 전에 먹으라고 했다. 곱게 간 짱뚱어가 들어간 국물은 목넘김에 불편함이 없었다. 맛있는 추어탕 같다고 하자 그는 “한 마리씩 손으로 잡아야 하는 귀한 물고기”라며 얼른 들라고 재차 권했다.

한국마사회는 숨 돌릴 틈 없이 달려온 김 회장의 마지막 일터일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이 언제나 그랬듯 가장 힘든 시기에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해 1월 취임할 당시만 해도 국정농단 연루 의혹, 용산 장외발매소 문제 등 그가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꼬인 매듭을 풀어가고 있다. 이미지 쇄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서울지역본부를 폐지하는 등 취임 100일 만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건전 놀이문화 조성 등 2022년까지 1948억원이 들어가는 6대 혁신 과제를 발표하고 추진에 속도를 붙였다. 경기 과천 레츠런파크를 다양한 공연 등이 펼쳐지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했고 용산 장외발매소는 지방 출신 학생들이 입주하는 장학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마사회가 해야 할 것은 사회 공헌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우리가 하는 일들을 알려야 합니다. 용산 장외발매소를 사회에 환원한 뒤 이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니 사람들이 ‘마사회가 이상해졌네’ 이런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는데 이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마사회의 사회공헌은 노인정이나 어린이집 같은 지역 민원을 해소하는 데 160억원을 쓰는 등 방어적이었습니다. 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 등을 앓는 소방관에게 제공하는 힐링 승마 같은 프로그램은 반응이 매우 뜨겁습니다.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조사해본 결과 일반 재활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왔고요. 국방부와 경찰 쪽에서도 힐링 승마에 관한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이미지 쇄신과 함께 김 회장의 임기 내 목표는 국내 경마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은 국제 경마에서 최고 수준 그룹인 G1 바로 아래 G2그룹에 속해 있다.

“G1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경주마가 좋아야 합니다. 좋은 종마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망아지 때 좋은 경주마를 싸게 사와 육성하는 시스템인 K닉스가 점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경주마 중 80% 정도가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80%의 우리 경주마들이 20%의 수입 경주마들과 경쟁해서 이기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국산 경주마도 좋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면 시장이 활성화되고 경마 수준도 올라갈 것입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낙순 한국마사회장, 산전수전 다 겪은 '멀티플레이어'

■한국마사회는…

한국마사회는 1962년 1월 20일 제정된 한국마사회법에 근거해 설립된 공기업이자 우리나라 유일의 경마(競馬) 시행 주체다. 경마의 공정한 시행과 원활한 보급을 통해 말산업 및 축산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이 있다. 2011년 3월에는 국내 최초로 말산업육성법이 공포되면서 경마 시행 외에 생활승마 활성화, 체육 승마 프로그램 개발 등 사업 분야가 확대됐다.

지난달에는 구민과 마찰을 빚던 옛 용산 장외발매소를 장학관 및 문화공간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등 사회적 가치 창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약력

△1957년 충남 천안 출생
△1995년 5월 영구아트무비 대표
△1995년 7월 서울시의회 의원
△2001년 서경대 철학과 졸업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2004년 고려대 정책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2012년 서경대 대학원 문화예술학 박사
△2016년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문화예술관광학과 초빙교수
△2018년 한국마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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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순 한국마사회장의 단골집 다래간주

20년 된 고흥식 남도식당…짱뚱어탕 '일품'


서울 신정동 주민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다래간주는 20년 가까이 된 ‘고흥식’ 남도음식 전문점이다. 대부분 전남 고흥에서 올라온 제철 재료로 음식을 조리한다. 흔히 알려진 보리굴비를 상에 올리는 남도음식은 영광, 목포, 해남식이다. 다래간주에선 고흥이 고향인 주인이 손맛을 더해 겨울에는 참꼬막과 숭어 굴 매생이 간자미 등을 주 메뉴로 낸다. 봄에는 갑오징어무침, 여름에는 민어나 병어회, 가을에는 전어가 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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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어탕은 사계절 내내 맛볼 수 있는 이 집 대표 메뉴다. 뻘에 사는 짱뚱어를 훌치기 낚시로 잡아 가져온다. 동작이 재빠르고 예민해 작은 인기척에도 달아나므로 숙련된 낚시꾼만이 한 번에 한 마리씩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짱뚱어를 갈아 갖은 양념을 넣고 걸쭉하게 끓여내면 완성되는 짱뚱어탕의 맛은 추어탕과 비슷하다. 비린내를 잡아야 하는 추어탕과 달리 짱뚱어는 바닷고기라 재료 자체에 비린내가 없다는 게 주인의 말이다.

점심 메뉴로도 인기인 짱뚱어탕은 8000원이다. 매생이, 갑오징어무침 등 요리는 1만~2만원 선이다. 숭어회나 병어회 등을 시켜도 3만5000원을 넘지 않는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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