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 사는 20대 직장인 A씨는 요즘 잠에 투자한다. 우선 음악을 들을 수 없는 보스 이어폰을 구매했다. 30만원대인 이 제품은 음악은 전혀 들을 수 없지만, 외부 소음을 차단해 숙면에 도움을 준다. 또 코골이 방지 테이프도 인터넷을 뒤져서 샀다. 잠들기 전에는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눈베개’를 덮는다. 사실상 눈과 귀, 입을 모두 막고 잔다. 그는 숙면을 취해야 낮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생각한다. 이달에 10만원짜리 베개도 살 예정이다.
A씨와 같이 숙면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20~30대가 늘고 있다. 수면 시장을 키우는 주요 소비자들이다. 이들을 겨냥해 전통적 수면 관련 업체 외에 전자, 통신, 의료회사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기능성 침구 시장도 커지고 있다.
불안한 20대 수면 시장으로
비디오커머스 기업인 블랭크코퍼레이션 사례는 젊은이들이 수면 관련 제품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브랜드 바디럽에서 최고 인기 상품은 마약베개다. 통째로 세탁기에 넣고 빨 수 있는 이 베개는 누적 판매량이 100만 개가 넘는다. 20~30대가 사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화제가 됐다. 마약베개가 흥행하자 마약 매트리스 등 후속 제품을 잇따라 내놨다.
실제 불면증과 불안장애 등으로 병원을 찾는 20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정신건강 질환 진료현황’에 따르면 2013년 8만3556명이던 불면증 환자 수는 2017년 12만3898명으로 48.3% 늘었다. 20대 증가율은 58.7%로 전체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불면증을 불러오는 불안장애를 겪는 20대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13년 2만4552명이던 환자 수가 2017년 4만3045명으로 75.3% 증가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취업난으로 사회 진입에 실패한 20대들이 불안장애와 불면증을 많이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다이슨·보스도 뛰어들어
다이슨 ‘라이트 사이클’ 이 시장에서 해외 기업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고가 시장이다.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은 지난달 조명기기 ‘라이트 사이클’을 국내 시장에 내놨다. 데스크형은 60만원대, 스탠드형은 90만원대에 달한다. 다이슨은 이 제품이 수면 주기를 제어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에 긍정적인 도움을 준다고 마케팅하고 있다. 다이슨 관계자는 “65세 이용자는 20세보다 최대 네 배 이상 더 밝은 빛이 필요하다”며 “적절한 조명을 이용하면 눈과 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내 조명 제조사인 필룩스는 사람의 생체주기에 맞춘 ‘감성조명’을 개발했다. 아침에 깨어날 때 태양빛에 가까운 빛을 서서히 비추면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스탠드 등이 대표적이다. 일출, 일몰, 한낮 등 시간에 따른 태양빛의 변화를 인공 조명에 담았다.
음향기기 회사인 보스는 지난해 수면 전용 이어폰 제품을 출시했다. 가격이 30만원대지만 음악은 들을 수 없다. 오로지 파도소리, 강물소리, 낙엽소리 등 백색소음만 들려준다. 지속적으로 나오는 편안한 소리가 외부 소음을 가려주는 ‘노이즈마스킹’이 적용된 제품이다. 이어폰은 뒤척이더라도 귀에서 잘 빠지지 않게 설계했다.
코로 숨쉬기 위해 입을 틀어막기도
코골이 방지 밴드와 테이프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제품도 등장했다. 잘 때 코가 아니라 입으로 숨쉬면 숙면에 방해가 된다는 점에 착안한 제품이다. 옥션과 G마켓에서 지난달 코골이 방지 밴드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숙면 코밴드와 입벌림 방지 밴드 판매도 늘고 있다.
의사들이 개발한 제품도 있다. 치과의사인 박미라 뉴턴1665 대표는 효과를 본 환자들의 권유로 ‘콧숨닥터’를 출시했다. 입을 벌리고 자는 사람들이 입술 위에 붙이고 자면서 코로 숨을 쉬도록 유도하는 제품이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건강히 좋지 않았던 박 대표가 자신을 위해 개발했다.
베개와 이불 같은 침구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크다. 이브자리가 2014년 선보인 수면 전문 브랜드 ‘슬립앤슬립’ 매장을 찾는 소비자의 절반 이상은 20~30대다. 슬립앤슬립 관계자는 “로프티와 니시가와 등 일본에서 수입한 베개는 가격대가 10만원 이상인 고가 제품”이라며 “20~30대 젊은 고객들이 꿀잠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전했다. 눈베개, 보디베개 등 기능성 베개의 종류도 늘어나는 추세다. 눈베개는 눈 부위를 찜질해 피로를 풀어준다. 죽부인처럼 생긴 보디베개는 잘 때 뒤척임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이처럼 건강에 민감한 20~30대가 숙면에 관심을 가지면서 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수면산업협회 관계자는 “전통적인 수면산업인 가구나 침대 회사뿐만 아니라 전자기기 회사도 뛰어들고 있다”며 “국내 수면산업 연간 규모는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와 다이슨, 보스 등 국내외 통신 및 전자기기 업체들이 잇달아 수면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노년층 중심이던 수면 관련 제품의 수요층이 20대 등으로 확대됨에 따라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LG유플러스는 올해 초 한국수면산업협회에 가입했다. 에이스침대 등 가구업체가 주축을 이루던 협회 구성원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계기였다. 이어 블루투스 헤드셋 등을 제조하는 엠아이제이, 숙면 유도용 웨어러블 기기 제조사 리솔 등 벤처기업 등도 합류했다. 해외 기업들은 ‘꿀잠’을 원하는 젊은 층을 겨냥한 숙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음향기기회사인 미국 보스는 수면 전용 이어폰 제품을,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은 수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조명기기를 한국에 출시했다. 모두 가격이 수십만원 하는 제품이다.기업들의 발 빠른 움직임은 젊은 층이 수면 제품의 주요 수요자로 떠오른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불면증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12만 명이었다. 이 중 20대는 1만 명에 육박했다. 전체 인원은 많지 않지만 환자 증가 속도는 60대와 80대를 제외하고 가장 높았다. 입시와 취업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와 스마트폰 사용 시간 증가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수면산업협회 관계자는 “젊은이들이 수요자로 편입되고 통신사, 생활가전회사 등이 뛰어들면서 올해 수면 시장 규모는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
꿀잠의 사전적 정의는 ‘아주 달게 자는 잠’이다. 의학계에서는 수면 부족이 치매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꿀잠의 조건으로 빛과 온도, 습도 등을 꼽는다.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은 “사람이 잠을 자는 밤 시간에는 빛이 사라지고 온도가 떨어진다”며 “원시 시대 인간이 살아가던 환경을 생각하면 숙면의 조건을 알기 쉽다”고 설명했다. 주변이 어둡고 온도가 체온보다 낮아야 잠이 들기 쉽다는 얘기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깊이 잠들기 어렵다.한 원장은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에서 발생하는 블루라이트가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며 “저녁 시간에는 블루라이트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꿀잠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많을수록 숙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 원장은 설명했다.숙면을 위한 이불 속 적정 온도는 32도 안팎이다. 습도는 40~50% 정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 거위털을 충전재로 사용하는 이불이 고급 제품으로 꼽히는 이유다. 거위털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데 적합한 소재다. 장춘기 이브자리 수면환경연구소장은 “나이가 들수록 체온이 떨어지고 체온 변화가 적다”며 “깔고 덮고 자는 이불 사이의 온도와 습도, 통기성 등을 종합해 침구류를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체형을 고려해 베개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면 자세에 따라 선호하는 베개 높이와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개인 맞춤형 수면 전문 브랜드인 슬립앤슬립에서는 경추(목뼈) 높이에 맞춰 베개를 추천한다. 슬립앤슬립 관계자는 “적합한 베개의 높이는 사람마다 다르다”며 “사람의 뒤척임에 맞춰서 모양도 변하는 베개가 숙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
올해 초 한국수면산업협회 신입 회원사로 합류한 LG유플러스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IoT 숙면등’을 출시한 데 이어 가구 회사 일룸과 협업을 진행하는 등 수면산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다.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숙면등을 선보인 뒤 시장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다”며 “센서 회사나 가구 회사 등과 협업을 확대하고 커지는 수면산업을 공략하기 위해 협회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수면산업협회는 2011년 이브자리와 에이스침대, 코웨이, 엠씨스퀘어 등 10여 개 기업이 모여 출범한 사단법인이다. 전통적인 수면산업으로 꼽히는 가구와 침구 회사가 주축이었다. 최근 몇 년 새 수면산업이 커지자 새로운 분야의 벤처기업들도 협회에 합류하고 있다. 센서와 전자기기를 만드는 기업들의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엠아이제이는 골전도 블루투스 헤드셋 및 청각보조기 등을 만드는 벤처기업이다. 안대 등 숙면유도용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하는 리솔, 안마의자를 만드는 사파헬스케어 등도 신입 회원사가 됐다. 장춘기 수면산업협회 부회장은 “창립 이후 몇 년 동안 정체돼 있던 회원사 숫자가 지난해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며 “연말까지 30개를 웃돌 전망”이라고 말했다.매트리스 렌털케어 사업 등을 하는 코웨이는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와 산학협력을 통해 뇌파를 이용한 수면 개선 연구를 하는 등 수면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지난달 열린 수면산업협회 정기총회에서는 장성인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 최지호 순천향대 부천병원 수면의학센터장 등이 신임 이사진으로 참여했다. 그중 박세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수면산업이라는 말조차 없던 1994년부터 수면 연구에 집중해온 전문가다. 대한수면연구학회에 따르면 전국에서 수면 클리닉 전문 병원만 50여 개가 넘는다.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경기도가 수면산업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는 2017년 전국 최초로 ‘경기도 수면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이은환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수면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며 “수면산업은 IoT 등 첨단기술과의 접목을 통한 신기술 및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기연구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수면장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11조원을 넘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