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사퇴후 남은 '관치' 논란…금감원·하나금융 '로키 모드'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3연임 포기로 금융감독원과 하나금융그룹 간 대립 구도가 상당 부분 해소됐지만 '관치(官治)' 논란이라는 과제가 남게 됐다.

지배구조 리스크에 대한 금감원의 우려 표명과 뒤이은 함 행장의 자진사퇴에 관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당사자인 하나금융이 함 행장 개인의 '결단'이란 설명을 내놓고 있어 사태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8일 하나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지성규 부행장을 새 행장 후보로 단독 추천한 것은 금감원의 지배구조 리스크 경고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금감원이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3명을 면담하면서 함 행장의 3연임에 대한 지배구조 리스크 문제를 경고한 지 이틀 만에 이뤄진 결정이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그룹 주변에는 함 행장의 3연임이 확실시된다는 분석이 많았다.

달리 말하면 금감원의 문제 제기로 결정을 바꿨다는 의미다.

이는 이번 사건을 '관치' 프레임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금감원이 특정 개인이 아닌 은행의 지배구조에 대해 경고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선 금감원이 함 행장을 낙마시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함영주 사퇴후 남은 '관치' 논란…금감원·하나금융 '로키 모드'
하지만 당사자인 하나금융이 "함 행장 연임 포기는 전적으로 개인의 결정"이라며 확전을 꺼리고 있다.

임추위는 금감원의 우려 표명과 관계없이 함 행장 연임을 밀고 나갈 의사가 있었으나 본인이 용퇴하는 바람에 교체 추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초 하나금융 임추위는 2월 말에 2∼3명의 복수 후보를 추리고 이달 초 하나은행 임추위가 최종 후보를 선택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26일 사외이사들의 금감원 면접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임추위는 여파가 더 확산하는 것을 막고자 28일에 행장 추천을 한 번에 끝내기로 했다.

함 행장은 임추위가 진행된 28일 아침 면접 포기 의사를 밝히고 고향 부여로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는 "당국과 은행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조직 안정이 먼저"라는 뜻을 전했다.

함 행장이 막판에 물러나면서 하나은행 임추위는 지성규 글로벌사업그룹 부행장을 차기 행장으로 추천했다.

함 행장이 '당국' 변수를 언급하긴 했으나 하나금융 측이 임추위가 아닌 함 행장 개인의 선택을 강조함으로써 금감원과 대립각을 누그러뜨린 것이다.
함영주 사퇴후 남은 '관치' 논란…금감원·하나금융 '로키 모드'
금감원 역시 '로키'(low-key) 모드다.

이번 사태가 '관치' 프레임으로 확산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완연하다.

함 행장의 자진사퇴에 대한 입장을 묻자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감원이 하나금융의 지배구조 리스크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자회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하나금융 이사회의 판단 사항"이라면서 "민간 금융사의 인사 결정에 대해 좋다 나쁘다 평가를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경고하는 것으로 역할을 끝냈다"고 말했다.

다만 '관치' 논란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하나금융의 대응 방향은 추후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가늠자다.

하나금융이 금감원에 떠밀려 은행장 인사를 철회했다는 뉘앙스를 풍길 경우 금감원으로선 타격이 불가피하다.

자유한국당은 금감원이 민간 은행장 선임에 관여해 특정인을 배제하려는 것은 일종의 '금융권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3월 임시국회 때 금감원장을 상대로 집중 추궁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금감원에 떠밀려 함 행장 3연임을 철회했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진정성을 스스로 허무는 행동이 될 것"이라면서 "감독기관과 피감기관으로서 관계 정상화 차원에서도 그러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