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는 돈을 버는 것 말고도 좋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투자 대상의 시세보다 내재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이 트이면 그 다음에는 사물과 현상의 본질과 가치, 나아가 삶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부사장(50·사진)은 사회 초년병 시절 삼성생명 투자분석팀에 재직했다. 발 빠른 정보와 넓은 인맥을 무기로 개인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다.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모멘텀 투자(시장 심리·분위기 변화 따른 추격매매 투자방식)는 거액의 손실로 돌아왔다.
생활이 힘들어진 그는 돈을 더 준다는 말에 솔깃해 삼성투신운용(현 삼성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주식을 뒤로하고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채권운용부에 들어갔다. 여기서 투자 방법은 물론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채권'을 알게 됐다. 그는 채권을 알고 난 후 주식을 보는 눈은 물론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변했다고 말한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무실에서 그의 투자론을 들어봤다.
◆"남은 건 마이너스 통장 뿐…죽으란 법은 없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흔하지 않던 미국 MBA(경영대학원) 과정을 템플대학교에서 밟은 서준식 부사장은 삼성생명 투자분석팀에 입사했다. 주변 증권사 친구들로부터의 정보가 넘쳐흘렀고 기관투자가로서의 네트워크도 탄탄했다.주식투자에 대한 자신감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시작한 주식투자는 1997년 IMF 사태와 함께 마이너스 통장으로 남았다. "자신감만 가지고 시작한 투자의 끝은 결국 '폭망'이었습니다. 가격을 쫓는 모멘텀 투자로 당시 제 연봉의 10배가 넘는 빚을 지게 됐습니다."
죽으란 법은 없다고 했던가. 그는 머지않아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다니던 보험사가 자산운용사를 인수하게 되면서 자리를 옮길 직원을 찾았고 그는 이직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전공인 주식운용이 아닌 채권운용부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주식투자로 빚까지 지고 자신감을 마저 잃었던 당시 연봉을 1000만원이나 더 올려준다는 소리에 삼성투신운용으로 갔습니다. 회사에서는 주식운용팀을 권했지만 고객의 돈까지 잃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잦은 야근으로 모두가 기피하던 채권운용부서로 가게 됐죠. 조금 엉뚱한 시작이었지만 저에게는 투자는 물론 인생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채권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면서 그는 그동안 자신이 했던 투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채권 업무를 하면 뗄 수 없는 것이 금리입니다. 금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이슈는 물론 정말 다양한 분야를 꿰뚫고 있어야 하더군요. 채권의 구조와 금리를 이해하고나니 투자 전반에 대한 눈이 떠졌습니다. 투자의 기본이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임에도 단기 수익에 눈이 멀어 모멘텀 투자를 했던 것이 실패요인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주식투자로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던 당시 주식시장의 기대수익률은 5%, 채권시장의 기대수익률은 14%였습니다. 14% 수익을 버리고 5%에 열심히 투자하고 있었던 것이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MSCI) 기준 국내 주식시장 주가수익비율(PER)를 활용해 계산한 결과 1997년 6월 국내 주식시장의 기대수익률은 5%가량, 5년 만기 국고채·은행보증채 등 채권시장에 투자했을 때 기대수익률은 14%가량이었다는 설명이다.
채권은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 등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일종의 차용증서다. 만기 시 원금과 함께 발행 당시 확정한 이자를 받는다. 채권을 알고나니 주식 중에서도 채권처럼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을 찾게 됐다.
그렇게 찾은 것이 바로 '채권형 주식'이다. 채권형 주식은 말 그대로 채권과 같이 미래가치(이자)를 가늠할 수 있는 주식들을 말한다. 실적이 꾸준하고 외부변수에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는 종목들이다. 서 부사장이 꼽은 채권형 주식은 LG생활건강 농심
서 부사장은 기대수익률을 산정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PER의 역수'(1/PER)를 활용한다. 현재 PER로 1을 나누면 1년간의 기대수익률을 구할 수 있다. 또 한국거래소에서 제공하는 코스피시장 PER 혹은 MSCI 한국시장 PER를 활용해 해당 주식의 고평가나 저평가 여부를 판단한다.
"미래가치는 곧 기대수익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채권은 수익률이 8%, 10% 등 확정돼 있어 미래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반면 주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채권형주식은 채권처럼 명확한 기대수익률을 구하긴 어려워도 대략적인 기대수익률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 경기, 조선 경기 등 '경기'가 붙지 않는 업종과 바이오와 게임 등 연구개발비 등이 크게 투자되는 종목은 피하고 본업에 충실하면서 꾸준히 실적을 기록해 기대수익률을 측정할 수 있는 종목이 채권형 주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 부사장의 철학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상품에도 녹아들었다. '스노우볼인컴펀드'는 채권형주식과 국내 채권을 선별해 투자한다. 채권형주식 투자 대상 종목을 채권처럼 등급을 나눠 분류하고 각 등급마다 목표수익률을 정한다. 기대수익률이 높아지면 투자하고 반대로 하락하면 매도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2월24일 설정된 11개의 스노우볼인컴펀드는 현재 1.39~2.72%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아직은 수익률이 낮지만 '스노우볼'이라는 이름처럼 장기로 갈수록 수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지난 25일 국내 기준 44조원(순자산가치·NAV)을 굴리고 있다. 서 부사장은 이 44조원의 투자를 총괄 책임진다.
◆"기대수익률 계산 못하면 주식 하지 마라"
결국에는 가격을 쫓는 모멘텀 투자가 아닌 가치투자를 해야한다는 조언이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투자에 임하고 단기에 수익을 내려하기 보다는 긴 시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멘텀 투자가 자산가치의 상승이나 하락을 전망해 가격을 쫓는 투자 방법이라면 가치투자는 자산의 가치를 분석하고 예측해 자산 가치 대비 현재 시세가 낮을 때 투자해 수익을 내는 것입니다. 상위 0.01%의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면 몰라도 모멘텀 투자에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드뭅니다. 가치투자는 자신 만의 기대수익률과 매수·매도 시점 등을 정해 투자하는, 잘 짜여진 레시피를 보면서 그대로 따라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단기적으로 전망하게 되면 전망이 적중할 확률은 매우 낮아지게 됩니다. 예컨대 동전의 앞면 수익률이 10%, 뒷면이 –10%면 한 번 던졌을 때 10%가 나올 확률보다 여러 번 던졌을 때 10%가 나올 확률이 더 높습니다. 주식시장처럼 기대수익률이 높은 곳은 단기보다 장기로 투자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주식의 기대수익률이나 나만의 투자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주식에서 손을 떼는 것이 낫다는 말도 전했다.
"워렌 버핏은 미적분처럼 복잡한 수학 계산법이 아니라 곱셈과 나눗셈 정도만 할 수 있으면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아주 기본적인 기대수익률 산정마저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주식을 하지 마시고 펀드 등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낫습니다. 자신의 기준과 철학이 담기지 않은 투자는 투기일 뿐입니다."
(9) 백지윤 블래쉬투자자문 회장여의도에서 주식으로 돈 잘 벌기로 손 꼽히는 백지윤 블래쉬투자자문 회장(45·사진)은 과거에 주식 때문에 두 차례 전 재산을 날렸다. 대학 시절 용돈을 모아 500만원으로 투자를 시작했을 때 1억원 넘게 돈을 벌었지만 곧 원금까지 포함해 모두 잃었다. 10여년 전에는 증권사에서 일하면서 번 돈을 주식으로 28억원 가까이 불렸지만 또 다 까먹었다.두 번째 투자 실패 후 백 회장에게 남은 돈은 30만원이었다. 월급 등 동원할 수 있는 돈을 싹싹 끌어모은 것이 3000만원. 그는 이 돈을 11년 만에 수백억원대로 불렸다. 지난해 초에는 원자현미경 업체 파크시스템스 지분을 5% 이상 취득하면서 '슈퍼개미'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 백 회장이 보유한 파크시스템스 지분은 52만여주(7.9%). 현재 주가 기준 평가액만 190억원대다. 이외에도 대림산업 한화케미칼 JB금융지주 등 20종목 정도를 가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블래쉬투자자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투자비법을 물었다.◆"몰빵하면 언젠간 쪽박"백 회장은 과거 버블을 타고 투자 수익을 올렸다. 1억원을 벌었던 2000년 대학 시절에는 닷컴 버블이 불면서 코스닥시장이 크게 뛰었다. 28억원을 수중에 쥐었던 2007년에는 부동산 버블에 증시도 활황세를 보였다. 코스피지수가 처음으로 20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익이 정점을 찍었을 때 위기는 찾아왔다. "돈을 크게 벌 때 꼭 사고를 치게 되더군요. 주가가 뛰고 수익을 올리는 것에 익숙해지니 기업에 대한 충분한 공부 없이 주식을 사들이게 됐습니다. 주구장창 계속 오를 수는 없는 게 주식 시장인데 이를 간과한 채 자산을 전부 '몰빵'해 투자했죠."버블은 금새 꺼졌다. 2000년 초에는 닷컴 버블 붕괴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백 회장이 보유한 주식도 곤두박질쳤고 자산은 바닥났다. 특히 두 번째 실패가 입힌 타격이 컸다. 당시 백 회장은 동부증권(현 DB금융투자)에서 일하며 매달 급여에서 기본 생활비를 제외한 전액을 주식에 투자했다. 이 때문에 투자 실패로 그는 그야말로 빈털터리가 됐다. 그럼에도 백 회장은 '크게 실패한 경험'에서 투자법을 배웠다고 했다."주식 투자는 큰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상당 기간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몰빵 투자를 하면 언젠가는 쪽박을 찹니다. 과감히 베팅을 하더라도 최악의 시기가 와 돈을 잃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은 남겨둬야 합니다. 그래야 지수가 반등하고 투자 기회가 왔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익이 증가하는 저평가주·배당주 관심여러차례 실패를 맛보면서 백 회장은 제대로 주식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주가가 왜 오르고 내리는 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했다."손해를 보니 기초부터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식 투자를 한 지 몇 년 만에 수급과 차트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 주가는 결국 기업의 가치를 따라가는 것이더군요. 시장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가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이는 일시적입니다. 주가는 장기적으로 시장의 분위기나 방향성보다는 기업의 내재가치에 맞춰집니다. 따라서 만약 회사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은 그대로지만 외부변수로 인해 센티멘털(심리적 요인)이 나빠져 주가가 많이 빠진다면 이는 주식을 살 기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초보자가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투자 방법은 시장이 급락했을때 저평가된 종목을 매수해 장기 보유하는 것이다. 분기 실적 발표 후 이익이 갑자기 증가하는 종목을 위주로 찾아보라는 조언이다. 3% 이상 배당을 주는 기업도 눈여겨보고 있다. 은행 정기예금이 1% 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축을 하는 것보다 낫다. 또 주주가치 제고에 힘쓰는 기업은 대체로 장기적인 성장성이 있어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최대주주나 경영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게 보게 됐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 주주와 이익을 공유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대주주가 어떤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등이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대한항공 주식에 투자한 적이 있습니다. 기업 자체는 매우 우량하고 괜찮죠. 그런데 조양호 회장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을 돕기 위해 대한항공이 보유한 S-Oil 지분 28.4%를 매각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주가가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한항공이 현재까지 S-Oil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지분가치만 대한항공의 시가총액을 넘을 겁니다. 최고경영자(CEO)의 장기적인 안목이 기업의 성장성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은 계기입니다."◆"주식이 도박이라고? 천만에!"기업 분석에 시간을 들이니 성과가 달랐다. 손실을 내는 종목이 크게 줄고 수익의 변동폭이 줄었다. 공부하고 노력하면 주식으로도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 회장은 2014년 10여년간 재직했던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전업 투자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에는 여의도에 작은 투자자문사를 차렸다. 증권맨과 전업투자자로 오랫동안 주식시장에서 쌓아온 전문성이 빛을 발했다. 백 회장이 세운 블래쉬투자자문은 기본 운용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성과보수만 받는다. 고객이 수익을 내야 보수를 받겠다는 것이다. "이미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을 만큼 돈은 벌었죠. 하지만 아직 제가 주식시장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대박'의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과부 마음은 과부가 안다고 했던가. 백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거듭 강조하며 개인투자자들에게 "꼭 주가와 기업에 대해 공부를 한 후 주식 투자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주식 투자는 도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기위해 주식을 한다면 그건 도박이며 투기입니다. 투자는 많은 정보와 지식,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동안 약 7~8년을 공부합니다. 또 입사를 하고 나면 하루에 최소 8시간은 일해야하죠. 이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몇백만원의 월급을 받습니다. 몇백만원을 벌기위해 이렇게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주식 투자에는 왜 노력을 쏟지 않을까요. 주식 투자는 도박이 아닙니다. 평소 일하는 만큼이라도 시간을 들여 공부해보세요. 제대로 했다면 월급보다 더 크게 돈을 벌 수도 있을 겁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사진·영상=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8) 공모펀드에 압승한 홍용찬 유안타증권 MEGA센터잠실 프라이빗뱅커(PB)홍용찬 유안타증권 MEGA센터잠실 프라이빗뱅커(PB)는 퀀트전략을 통해 기록적인 수익률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 계좌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수익률 162.61%를 기록했다.홍 PB는 "이는 27%의 연평균 복리수익률을 의미한다"며 "고객 계좌도 비슷한 방식으로 운용해 고객 수익률 계좌도 이와 비슷하다"고 밝혔다.퀀트전략은 오로지 숫자에만 기반해 투자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주가수익비율(PER) 등을 따져 숫자로만 편입할 종목을 결정한다. 퀀트전략을 통해 지난해 코스피시장의 급락에도 선방할 수 있었다. 그가 운용하는 랩어카운트 수익률은 지난해 4.62%를 기록했다. 코스피지수가 지난 한 해 동안 17.68% 급락한 상황에서 플러스 수익률을 거둔 것이다. 심지어 국내 900여개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의 코도 납작하게 눌렸다. 그가 거둔 랩어카운트 수익률은 국내 전체 주식형 공모펀드 수익률 -18.58%(에프앤가이드 기준)보다 23%포인트나 더 높았다. 그가 개인투자자들에게 "워런 버핏 같은 안목이 없다면 퀀트 투자를 하라"고 조언하는 이유다.경희대 재학 당시 주식투자 동아리 활동을 하던 그는 졸업 이후에도 주식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2006년 유안타증권(당시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퀀트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된 것은 2013년이었다. 그는 2010년 코스피 종목 하나에 투자했다. 열심히 분석한 저평가종목이었는데 이 종목으로 2년간 30% 수익률을 올렸다. 같은 기간 코스피의 상승률인 7.60%보다 높았다. 그러나 자신이 열심히 분석한 종목보다 가치지표가 비슷했던 다른 종목의 수익률이 더 좋았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퀀트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투자했던 종목과 비슷한 가치지표를 가지고 있었던 종목의 수익률을 따져봤습니다. 그런데 투자하지 않았던 종목들이 오히려 더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전 열심히 종목을 찾았던 건데 단순히 숫자로 종목을 찾은 것 보다 못했던 셈이죠. 저의 주관적인 종목선택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이후 그는 가치지표를 활용하는 퀀트투자자가 됐다. 다양한 재무지표를 바탕으로 수익률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현금흐름비율(PCR),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매출비율(PSR) 등을 활용한 기준을 세워 종목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중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는 PBR이다.그의 퀀트전략은 모든 종목을 동일한 비중으로 매수한다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투자금이 1억원이라면 40종목을 매수해 하나의 종목당 250만원어치를 산다."상당히 무식해보이는 방법이지만 수익률은 괜찮습니다. 250만원씩 종목을 사들인 후 시간이 지나면 종목을 정기적으로 교체해줍니다. 만약 6개월이 흘렀다면 250만원으로 산 종목 중 하나는 2배 이상 올라가면서 500만원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목은 250만원 투자해서 반토막이 나서 125만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선정한 종목들이 뒤죽박죽이 돼 있을텐데 많이 올랐던 종목은 팔고 많이 떨어진 종목은 추가로 사면서 정기적으로 바꿔줘야 한다는 게 특징입니다."자신의 계좌 자금도 고객 계좌와 동일한 퀀트전략을 쓰고 있다. 퀀트방식으로 운용하는 개인계좌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수익률 162.61%를 기록했다.그는 "이는 27%의 연평균 복리수익률을 의미한다"며 "개인 계좌도 동일한 퀀트전략을 쓰지만 비중이나 종목을 교체해야 할 시기엔 고객계좌를 먼저 담고, 제 계좌는 나중에 바꾼다"고 말했다.홍 PB가 생각하는 퀀트전략의 장점은 주관적 판단능력, 즉 선천적 안목이 없는 사람이 실수없이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점이다. 선천적 안목이 없는 투자자들은 주관적 판단을 배제했을 때 오히려 수익률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주식투자자를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는 선천적 안목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이용해 투자하는 사람, 두번째는 선천적 안목이 없으며 이를 깨닫고 주관적 판단을 배제해서 투자하는 사람, 세번째는 선천적 안목이 없는 데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선천적 안목이 없으며 이를 인지하는 사람입니다. 선천적 안목으로 투자하는 첫번째 사람만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두번째에 해당하는 사람도 돈을 벌 수 있는데요. 세번째와 네번째에 해당하는 사람도 현실을 즉시하고 두번째처럼 투자하면 괜찮은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본인이 선천적 투자자인지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투자전략을 통계적으로 검증해 보라고 조언했다."한 번 자기가 주관적 판단으로 고른 종목과 정량적 판단으로 선택한 종목을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량적으로 찾은 종목은 투자를 안 하고 리스트만 갖고 있어도 됩니다. 주관적 판단으로 고른 종목이 좋았는 지 정량적 판단의 수익률이 더 나았는 지 1~2년 후에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을 텐데요. 그렇게 해서 내가 직접 선택한 종목의 수익이 좋았다면 선천적 안목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보면 됩니다."특히 개인투자자들은 투자전략을 통계적으로 검증해 볼 것을 당부했다."누군가 작년에 영업이익률이 높은 기업이 올해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얘기한다면 바로 그 말을 믿지 말고, 실제로 통계적으로 검증해 보는 것입니다. 통계를 내보면 정말 뜻밖의 결과가 나옵니다. 이렇게 하나씩 해보면서 자신의 투자전략을 만들어가는 겁니다."최근 그는 그간 상품을 운용하면서 통계 낸 자료를 모은 '실전 퀀트투자'라는 책도 냈다. 책에서도 선천적 능력이 없는 투자자들은 퀀트투자에 도전해 볼 것을 조언했다. 그는 "워렌 버핏이 코카콜라가 저평가 상태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그의 안목이 큰 역할을 했지만 필자는 워런 버핏의 안목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서 "선천적 능력이 없는 투자자라면,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높은 확률로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퀀트투자"라고 강조했다.책에서는 사람들의 통념에서 벗어난 결과를 확인했다. 보통 영업이익률이 높은 기업들이 주식투자 수익도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적자난 기업을 제외하고는 영업이익률이 낮을수록 수익이 더 높다는 결과를 얻어냈다."전년도에 영업이익률이 낮았던 회사가 오히려 수익이 더 높았습니다. 영업이익률 30% 기업과 1% 기업을 비교하면 후자가 수익이 더 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년도 영업이익률이 높았던 회사는 TV나 언론 등을 통해서 해당 업종이 많이 집중됐을 것이고, 투자자들도 관심을 두면서 해당 기업은 상대적으로 고평가될 수 있습니다. 반면 영업이익률이 낮았던 회사는 자기가 받아야 할 적정가치보다 더 낮은 가격에 형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저평가된 종목을 사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홍 PB는 퀀트투자자의 필수 덕목으로 '인내심'을 꼽았다.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정한 원칙을 지켜가야 한다는 점에서다."지난해 시장이 급락에도 수익을 냈던 것은 제가 뛰어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가치지표를 활용한 퀀트전략이 좋았던 해였습니다. 물론 2018년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좋을 것입니다. 퀀트투자는 시장 급변에도 계속 투자기법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퀀트투자에선 손이 느린 게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퀀트투자는 매일, 매달, 매년 수익을 내주는 방법이 아닙니다. 1~2년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포기할 투자자라면 처음부터 퀀트투자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글 =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사진·영상 =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7) 운용자산 10배 불린 이건규 전 VIP자산운용 CIO"2010년 이전에는 자산 관점에서 가치투자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이익 성장에 비해 저평가된 기업들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구조에 진입했다는 점이 핵심이죠."지난 14일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건규 매니저(사진)는 "이제 가치투자의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세계 경기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경기가 좋아지면 자산가치 대비 싼 기업의 주가가 올랐다. 그러나 현재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경기가 좋아질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익 성장을 안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그는 18년차 펀드매니저다. 가치투자로 유명한 VIP자산운용(옛 VIP투자자문)의 2003년 창립 초기부터 지난해 10월 초까지 16년간 근무했다. 그 중 9년은 최고투자책임자(CIO)였다. 그가 2010년 CIO를 처음 맡을 당시 VIP자산운용의 운용자산은 2000억원 규모였고, 나올 때는 2조원 수준이 됐다. 운용자산이 10배로 불어나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저평가 주식을 사는 가치투자라는 철학이다.바뀐 것은 저평가 주식을 찾는 관점이다. 자산가치에 비해 주가가 몇 배에 거래되고 있는지를 보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아닌, 이익을 기준으로 하는 주가수익비율(PER)에 더 주목하고 있다.이 매니저는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이익이 증가하는 기업들의 희소성이 높아졌다"며 "이제는 단순 저평가가 아닌 미래의 성장성 대비 저평가돼 있는 주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DB, 이익 성장이 확정된 가치주그가 VIP자산운용 시절 이같은 기준을 적용해 발굴한 기업이 하이비젼시스템이다. 하이비젼시스템은 스마트폰 카메라 검사장비업체다. 애플의 아이폰 카메라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관련 장비의 수요 증가로 실적이 계단식으로 성장했다. 2017년 애플은 아이폰에 듀얼카메라를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 매니저는 기업탐방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감지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2017년 75억~80억원의 순이익을 예상했는데 이는 보수적이라고 봤다. 2012년 기록했던 148억원의 달성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투자를 집행했다. 하이비젼시스템은 2017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204억원의 순이익을 냈고, 주가도 급등해 1년 동안 2배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다.이 매니저가 현재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종목은 DB다. 그는 "DB는 지난해 10월 재미있는 공시를 냈다"며 "DB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동부 계열사 23곳으로부터 2018년 11월부터 2021년까지 상표권 사용료를 받는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공시에 따르면 DB 브랜드를 쓰는 기업은 2018년 11월부터 올해까지 매출의 0.1%, 내년부터 2021년까지 0.15%를 사용료로 DB에 내야 한다. DB 계열사들의 매출이 20조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2019년 200억원, 2020~2021년 300억원의 상표권 사용료 매출이 발생한다.이 매니저는 "다른 변수가 없다면 DB는 내년까지 이익 성장이 확정적"이라며 "주가는 아직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그는 원가 개선이 가능한 업체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셋톱박스 업체들의 실적이 급감했다. 올해는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셋톱박스 업체들의 원가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또 필수소비재인 포장재 회사도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이익이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다. ◆종잣돈 마련까지는 허릿띠 졸라매야이 매니저는 개인들에게 투자하라고 권고한다. 과거 고성장 시기에는 물가상승률을 넘어서는 임금 인상으로 월급과 저축만으로도 자산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경제성장률이 축소되면서 임금상승률도 크게 낮아졌다. 또 연봉이 올라갈수록 세율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실질소득의 증가율은 크게 둔화된다.그는 "투자를 위한 시드머니(종잣돈)를 모으기 전까지는 소비를 억제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는 저축에 가중치를 두고 투자는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잣돈과 함께 경험이 생기면 부동산이나 주식, 금융상품 등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하라는 주문이다.주식투자 전문가인 이 매니저는 주식 시장은 종목 발굴과 검증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수익률이 좋은 펀드에 돈을 맡기는 것도 괜찮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주식 발굴 능력이 있어야 좋은 펀드도 고를 수 있다"며 "펀드는 가입 전 투자자산군(포트폴리오)을 설명하는데, 이 포트폴리오를 봤을 때 좋다 안 좋다를 알아야 좋은 펀드에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이 매니저는 16년간의 VIP자산운용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40대 중반에 가까워지면서 내 일을 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중소형주를 발굴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현재 자산운용사 인수를 검토 중이다. 여의치 않으면 신규 설립도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출발은 올 상반기에는 가시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그는 "새로운 회사는 가치투자를 기반으로 비상장 주식도 가져갈 계획"이라며 "비상장 주식은 시세 등락이 작기 때문에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고, 상장이나 자금유치 등의 이슈가 발생하면 계단식으로 기업가치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사진·영상=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