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기자의 알쓸커잡 (38) 호주의 '테이크아웃 금지' 카페
카페에서 커피 한잔 즐기기에 인생은 충분히 길다

플라스틱 빨대와 일회용컵 사용 줄이기 운동. 지난해 전 세계 커피업계를 강타한 이슈였습니다. 바다거북의 코에 빨대가 박혀 있는 사진 한 장이 큰 충격을 던졌지요. 녹는 빨대가 개발됐고, 개인 텀블러 사용도 크게 늘었습니다. 텀블러를 잊고 출근한 날은 커피를 마실 때마다 바다거북 얼굴이 떠올랐으니, 꽤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호주 멜버른에 갔을 때입니다. ‘커피 테이크아웃 금지’ 카페를 몇 곳 봤습니다. 순간 ‘이 카페 주인은 엄청난 환경운동가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호주 대부분 카페는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오후 4~5시 닫을 때까지 500잔~1000잔 안팎의 커피를 쉴 새 없이 만들 정도로 바쁩니다. 앉아서 마시기보단 매장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손님이 70~80%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 텀블러를 가져와도 테이크아웃을 안 해주다니. 절반 이상의 매출을 포기하고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속사정은 따로 있었습니다. 테이크아웃 금지 카페들도 처음엔 환경보호를 이유로 유리컵이나 텀블러 사용을 ‘권장’했다고 합니다. 유리컵과 텀블러를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카페 안에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늘었지요. 그때 바리스타들은 느꼈답니다. 잠시나마 의자에 앉아 커피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고요. 덩달아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의 행복감도 커졌다고 합니다. 테이크아웃 금지의 이유는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게 하고 싶어서”랍니다.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 문화는 1990년대 이후 도시인의 ‘각성제’이자 ‘지식 노동자들의 연료’로 기능했습니다. 카페에 앉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차분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이전의 문화는 점차 사라졌지요. 로고가 박힌 일회용컵을 들고 도심 한복판을 바쁘게 걸어가는 게 ‘쿨하고 멋진’ 이미지가 됐으니까요.

‘테이크아웃 금지 카페’ 운동은 호주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도 시작되고 있답니다. 멜버른에서 테이크아웃 금지 카페를 운영하는 다니엘 루이스는 “요즘 세대는 커피 테이크아웃이 없던 시절을 알지 못한다”며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행위, 그것만으로 하루의 작은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 카페의 벽에 적힌 글. ‘맛없는 커피를 들고 다니며 마시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하지만 카페에 앉아 한 잔을 즐기기에 인생은 충분히 길다.’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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