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까에 협상의 성공과 실패가 달렸다
지난 10일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이 타결됐다. 금액은 지난해보다 8.2% 오른 1조389억원이며 협정 유효기간은 1년으로 마무리됐다. 이 협상에서 미국 측은 금액을 양보했고 한국은 기간을 양보했다. 한·미 양측은 10차례에 걸친 협상으로 입장 차이를 좁혔고, 결국 ‘주고받기’식 거래인 바게닝 믹스를 통해 타결했다.

쟁점 내용은 모두 중요했다. 하지만 하나씩 파고들어가 보면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해당 쟁점이 주는 가치의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 1차 관문이다. 그다음 단계에 가치가 다른 안건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윈윈협상을 이룰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 리더들이 흔히 갖는 오해가 있다. 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도 똑같이 중요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예를 들어 가격, 납기, 대금지급 조건 등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완제품 출시를 앞둔 구매자에게 원자재 수급 일정이 빠듯하면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재고 확보다. 반면에 공급자 입장에서 만약 재고가 충분하면 납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이슈도 입장에 따라 매기는 가치가 다른 것이다.

인식의 차이에 착안한다면 양측 모두 거래의 가치를 키우는 데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노련한 리더는 한 가지 조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거래 안건들을 모두 테이블 위에 일단 올려놓고, 안건의 중요도에 따라 서로 교환한다. 내게 덜 중요하지만 상대에게 중요한 것은 내주고 상대에게 덜 중요하지만 내게는 중요한 것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SC제일은행 본점 매각 협상이 좋은 사례다. 2015년 SC제일은행이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앞에 있는 옛 제일은행 본점 건물을 850억원에 신세계백화점에 매각하기로 했다. 2000년 이후 이 일대를 ‘신세계 타운’으로 키우려는 신세계그룹으로부터 수차례 매각 제의를 받았지만 매번 거절했다. 제시된 가격도 나쁘지 않았는데도 제안을 거절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건물은 제일은행의 전신인 조선저축은행이 1935년 지은 것으로 역사적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C제일은행은 매각을 결정했다.

SC제일은행은 당시 새 점포 개설, 영업시간 연장을 위한 전산 시스템 구축 등을 위한 재원이 필요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매입 의사를 밝혀온 신세계백화점과 다시 매각 협상을 한 이유는 영업력 강화를 위한 점포 확대였다. SC제일은행은 당시 전국 60여 개 대형 점포를 가진 이마트에 주목했다. 매장 내에 은행 점포를 개설할 수만 있다면 매각 가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돈 들이지 않고 신규 점포를 60여 개나 개설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편 신세계그룹 입장에서도 이마트 안에 은행 상담 데스크를 설치하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장 안에서 은행 직원 2~4명이 금융 상담을 해준다면 쇼핑객들에게도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양사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결국 SC제일은행은 건물의 역사적 상징성을 포기하는 대신 60여 개 미니 점포를 챙겼고, 신세계백화점그룹은 큰 부담 없이 ‘신세계 타운’을 만들 수 있었다.

윈윈협상이란 서로 다른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나눌 수 있는 가치를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기술적으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해당 안건의 가치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조사하는 일이다. 특히 상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둘째,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건을 파악했다면 상대 요구를 쉽게 수용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따리를 한꺼번에 꺼내 놓지 말고 하나씩 그리고 천천히 풀라는 얘기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다만 뭘 주고 뭘 받을 것인가에 따라 성공한 협상이냐 아니냐가 판가름 난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