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분석
고용 참사에도…1월 농림어업 취업자 10만명 증가 '미스터리'

고용동향 원데이터 뜯어보니

정부 "자발적 귀농 증가"라지만 경기침체 따른 실직·은퇴자 귀농
자영업 문 닫은 60대 귀향 늘어…대부분이 무급 가족종사자

취업 못한 2030 귀향도 급증…집에서 농사 돕는 청년 많아져
취업 늘었지만 농업GDP 제자리…"경기침체 알리는 나쁜 신호"
지난달 취업자 증가폭은 1만9000명에 불과했지만 농림·어업 분야 취업자는 10만7000명 급증했다. 취업자 증가폭이 9만7000명에 그친 지난해 ‘고용참사’ 통계에서도 유독 눈에 띈 건 농림·어업 분야 취업자 급증(6만2000명 증가)이었다. 산업별로 보면 농림·어업 취업자는 공공일자리 등이 많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늘었다. 2000년대 이후 계속 감소하며 고용을 갉아먹던 이 산업에서 취업자가 갑자기 늘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통계 분식’ ‘건강보험료 부정수급자 증가’ 등 억측이 나오는데도 정부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말을 아껴 왔다.

하지만 이런 기현상이 도시에서 밀려난 실직자와 은퇴자들의 ‘비자발적 귀농’ 때문인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경제 전문가들의 통계 분석을 통해서다.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자발적 귀농’이 아니라 도시에서 실직하거나 폐업한 뒤 낙향한 노인들이 생계를 위해 농업에 대거 뛰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실직자 귀농에 농촌 취업자 급증…"경기침체 전조일 수도"

도시에서 쫓겨난 60대 ‘비자발적 귀농’

20일 농촌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2018년 고용동향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농림·어업 취업자는 전년보다 6만1540명 증가한 116만9393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90% 이상이 농업 취업자로 추산된다. 농업 취업자 증가를 이끈 건 60대 이상(5만8797명 증가)이었다. 자영업자(2만9519명)와 함께 가족 일손을 돕는 무급 가족종사자(3만2384명)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자영농과 그 배우자가 급증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에서 장사를 하다 폐업한 고령의 자영업자 및 저임금 근로자들이 귀향해 농업에 뛰어든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정부 내에선 ‘자발적 귀농’ 인구가 늘어났다는 해석도 있지만 실제 귀농 인구 증가가 곧바로 취업자 증가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7년에도 귀농 인구가 4.6% 증가했지만 농사를 짓는 귀농인은 거꾸로 4.5% 감소했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자영농과 무급 가족종사자 급증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는 ‘생계형 귀농’ 인구가 대부분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석은 추경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경남 등 농업 취업자가 급증한 지역을 담당하는 통계청 지방청에 문의해 받은 답변과도 일치한다. 통계청 지방청 관계자들은 “도시지역 실직자와 은퇴자들이 귀농하면서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종사자가 증가했다”며 “특히 경남 지역에서는 조선업에 종사하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뒤 특수작물 시설재배 농가와 마늘 양파 등 대체작물 재배 농가에 취업하는 사례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30대 이하 취업자가 소폭 증가한 것도 취업 지연으로 일손을 돕는 청년이 늘었기 때문이란 게 통계청 지방청의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농촌에선 최저임금 기준이 잘 지켜지지 않는데, 최저임금보다 낮은 금액을 받더라도 일하겠다는 청년들이 농촌으로 이동한 요인도 일부 있다”고 했다.

“경기 침체 전조일 수도”

선진국에선 자영농이 급증하는 현상을 경기 침체 전조로 해석하는 사례가 많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가 급격하게 고꾸라진 스페인과 그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스페인에서는 이를 지칭하는 ‘루르바니스모(rurbanismo)’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성 교수는 “경기 침체 국가에서 농어촌 취업자가 증가하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농림·어업 고용의 대부분이 제조업 등 일자리보다 현격하게 질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제조업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경기 활성화 효과가 있지만 농림·어업 고용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약점이다. 1998년 농업 취업자가 급증했을 때 경기 활성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도 비슷한 배경이다. 지난해 농림·어업 분야 취업자가 전년 대비 4.8% 늘었지만 이 분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4%에 그쳤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농업법인 및 스마트영농이 늘고 관련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농림·어업 고용이 늘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며 “하지만 그게 주된 배경이라면 취업자 증가율과 이 분야의 GDP 증가율이 비슷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통계 착시’ 묵인했나

정부가 농림·어업 분야의 취업자만 증가한 ‘진짜’ 원인을 알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해부터 농림·어업 취업자 급증 이유를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기획재정부는 작년 1월 이후 고용지표 분석 자료에서 농림·어업 취업자 증가에 대한 설명을 담지 않았다. 작년 6월 취업자 증가폭 급감에 대해 “인구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며 별도 자료까지 배포했던 걸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기재부 한 공무원은 “경남지역 통계 원자료만 들여다봐도 조선업 실직자가 대거 귀농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기재부가 이 같은 원인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발표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고용통계 착시를 일으킬 수 있는 농림·어업 취업자 증감을 뺀 새로운 고용통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농업 취업자가 급증하면서 고용통계 착시 효과가 심화하고 있다”며 “농업 부문 일자리, 공공행정, 보건복지 가사서비스 등 비영리 부문을 제외한 ‘비농업 임금근로 통계’ 지표를 따로 작성해야 제대로 된 고용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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