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 사는 60대 후반 A씨는 은퇴 후 아내와 둘이 살게 되자 면적이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지은 지 15년 된 아파트로 옮기면서 내부를 리모델링했다. A씨의 30대 후반 딸과 아들은 모두 분가했다. 딸은 의사, 아들은 중견기업 직원이다. 두 사람 모두 미혼의 1인 가구다. A씨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한국사회 트렌드를 살펴봤다. 이 트렌드는 최근 중견·중소기업 실적에 그대로 나타났다.
中企 실적으로 본 트렌드…렌털·인테리어시장 뜨고 주방용품·가전시장 지고
코웨이 매출 2조7000억원 돌파

미세먼지가 심해지자 A씨의 딸과 아들은 각자 집에 공기청정기와 건조기를 렌털했다. 딸은 세탁소에 갈 시간이 없어 의류청정기도 들여놨다. 자녀들은 A씨 집에도 공기청정기와 건조기를 주문해줬다. 이 세 가정은 이미 정수기와 비데를 렌털해서 쓰고 있다. 한 달에 생활가전 렌털료만 10만~16만원 정도 든다. 환경오염, 건강에 대한 관심, 직접 찾아와 관리해준다는 편리함 등 때문에 생활가전을 렌털해서 쓰는 A씨와 같은 가정이 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렌털업체가 일제히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린 배경이다.

국내 1위 코웨이는 지난해 매출 2조7073억원, 영업이익 519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7.6%, 10% 증가했다. 코웨이는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 기존 제품은 물론 의류청정기 등 새로운 제품의 렌털 계정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SK매직 청호나이스 교원 현대렌탈의 매출도 사상 최대였다. SK매직의 지난해 매출은 6438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늘었다.

주방용품업체 불황 돌파 안간힘

A씨의 아들과 딸은 모두 간편식을 자주 먹는다. “건강을 챙겨라. 간편식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며 잔소리하던 A씨의 아내도 달라졌다. 딸과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간편식 매력에 빠졌다. 하루에 한 번은 간편식을 내놓는다. “먹어보니 맛있네. 내가 언제까지 주방에서 동동거려야 해.” 아내의 말이다. 이 트렌드는 주방용품 주방가전업체의 실적에 타격이 됐다.

밥솥업체 쿠첸의 지난해 매출은 2242억원으로 전년 대비 5% 정도 감소했다. 밀폐용기업체 락앤락도 2017년 매출 감소를 맛봐야 했다. 지난해 국내 매출도 0.7% 줄었다. 이들은 부진한 주방용품·가전 시장에서 벗어나 생활용품·가전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쿠첸은 전기레인지와 유아가전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락앤락은 종합 생활문화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락앤락의 밀폐용기 매출 비중은 2013년 41%에서 2017년 27%로 낮아졌다.

A씨 가족은 간편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한번 택배가 왔다 가면 집 앞에 빈 상자가 쌓인다. 골판지업체 실적이 개선된 이유다. 신대양제지는 지난해 매출 7093억원, 영업이익 116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38%, 306% 늘어난 수준이다. 아세아제지의 영업이익은 18배나 증가했다. 아세아제지 측은 “온라인 쇼핑에 따른 택배 물량이 급증하고 있다”며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택배 상자가 소형화되고 개수는 늘어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태평양물산 다운 열풍에 어닝서프라이즈

A씨 부부는 자녀들의 집에 갈 때마다 뭔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매번 집안을 장식하는 새로운 소품이 늘기 때문이다. 이들은 ‘집 꾸미기’라는 트렌드를 보여준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2040세대는 혼자 살더라도 잘 꾸며진 집에서 편히 쉬고 싶어한다. 집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제품을 파는 소품 업체의 실적은 좋아졌다. 소품 업체 무인양품을 운영하는 무지코리아는 지난해 15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약 36% 증가했다. 현대리바트가 운영하는 홈퍼니싱 소품 브랜드 윌리엄스소노마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5배 이상 늘었다.

인테리어 열풍은 한샘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샘의 4분기 매출은 4712억원, 영업이익은 250억원을 기록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가구뿐 아니라 욕실 창호 바닥재 등 집 전체 공간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리하우스 패키지’는 지난해 4분기부터 월 400~500개 판매되고 있다.

A씨 가족은 지난겨울 롱패딩을 하나씩 사입었다. 작년에 불었던 롱패딩 열풍은 태평양물산 코웰패션 등 기업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 태평양물산은 국내 최대 다운 공급업체다. 태평양물산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5.6% 늘어난 9746억원, 영업이익은 47.6% 증가한 350억원으로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올겨울 한파를 예상한 의류업체들이 지난해부터 패딩에 필요한 원자재 주문을 크게 늘린 데 따른 것이다.

코웰패션도 지난해 매출 3394억원, 영업이익 711억원을 기록하며 최대 실적을 올렸다. 올겨울 한파 예보로 여름부터 판매를 시작한 ‘역시즌 롱패딩’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전설리/심성미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