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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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글로벌 증시는 곳곳에서 ‘반전 드라마’를 썼다. 주요국 경기둔화 우려 등에 지난해 12월 9.18% 급락했던 S&P500 지수는 지난달 7.9% 뛰어올랐다. 1월 상승률 기준으로 1987년 이후 32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의 반전은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달 코스피지수는 8.02% 상승했다. 월간 상승률로 보면 2011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말 2400선까지 밀렸던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꾸준히 낙폭을 만회하며 2500~2600 선에 안착했다.

브라질과 러시아 증시도 쾌재를 불렀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유가 반등 효과 등으로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와 러시아 RTS 지수는 1월 각각 10.82%, 13.64% 올랐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연이은 금리 인상과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로 신흥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증시가 큰 타격을 받은 지난해 말과는 반대되는 상황이다.
美 금리인상 속도조절·中 경기부양 효과 기대… 신흥국펀드 올라타볼까
악재보다 호재에 민감했던 1월

방향타를 돌린 결정적 요인은 Fed의 금리 인상 정책기조 변화였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 등을 반영해 Fed가 금리 인상 속도조절론을 내비치자 한동안 억눌렸던 위험자산 선호 심리는 다시 살아났다. 미·중 무역분쟁 완화에 대한 기대,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시도 본격화 등도 투자 심리에 힘을 보탰다. ‘나올 만한 악재는 이미 다 나와 있다’는 판단을 내린 투자자들은 악재보다 호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해 말 급락장에서 더 호되게 매를 맞았던 신흥국 증시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달러 약세 압력이 완화되면서 신흥국으로 자금이 흘러갈 여건이 조성된 가운데 지난해 선진시장에 비해 크게 조정받았던 신흥시장의 저평가 매력이 부각됐다. 중국의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날 경우 신흥국 전반의 숨통이 트일 것이란 기대도 더해졌다.

글로벌 자금은 앞다퉈 신흥국으로 흘러갔다.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에 따르면 1월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신흥국 전체 주식형 펀드로 순유입된 자금은 139억달러에 달했다. 이 기간 선진국 전체 주식형 펀드에서는 492억달러가 순유출됐다.

지난달 국내 증시 반등을 이끈 것도 외국인 투자자의 ‘바이 코리아’ 행진이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5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월별 순매수 금액으로는 2015년 4월(4조6493억원) 후 3년9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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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펀드 ‘기지개’

지역별 펀드도 신흥국 펀드를 중심으로 기지개를 활짝 켰다. 러시아와 브라질이 선두에 섰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 설정된 러시아 펀드 10개는 연초 이후 12.17%(지난 8일 기준)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손실분(-6.48%)을 단숨에 만회했다. 지난해 1.67% 수익을 내는 데 그친 브라질 펀드도 올해 들어 10.73%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큰 손실을 본 중국 펀드 투자자들도 한숨을 돌렸다. 중국 펀드 166개는 지난해 미국 금리 인상과 미·중 무역분쟁,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증시가 꺾인 영향에 24.10% 손실을 봤지만 올해 들어선 10.77% 수익을 냈다. 무역분쟁 완화와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고 저점 매수에 나선 투자자가 증가하면서 연초 이후 23억원의 자금이 펀드에 순유입되기도 했다.

모든 신흥국이 웃은 건 아니다. 인도 펀드는 연초 이후 1.15% 손실을 냈다. 인도는 그간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권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어 협상 진전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데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연임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증시가 탄력을 받지 못했다. 센섹스 지수의 1월 상승률은 0.52%에 머물렀다.

한국 투자자들이 끝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베트남 증시도 신흥국들의 ‘미니 랠리’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베트남 펀드는 올해 들어 0.38%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의 최대 교역국가라는 점에서 미·중 무역분쟁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VN지수가 지난해 9%가량 하락했지만 이전까지 6년 연속 상승한 터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 부담이 여전히 높다는 점도 반등의 발목을 잡았다.

“1분기 조정 땐 신흥시장 매수 기회”

이달 들어 글로벌 증시는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경기 기초체력(펀더멘털) 개선이 아니라 투자심리 회복만으로 크게 반등한 만큼 피로감이 누적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중 무역협상 시한인 3월 1일을 앞두고 당초 이달 중 열릴 것으로 시장이 기대했던 미·중 정상회담이 무산되면서 추가 반등 동력도 약해졌다.

안영진 SK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월은 모든 것이 좋았지만 오는 3월은 굵직한 출발선 상에 놓여 있는 이슈가 많고 2월은 그 과도기”라며 “명확한 방향성을 정하기보다는 상황별 시나리오와 시장 영향에 대비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지난 90일간 중단된 미·중 무역분쟁은 다음달 초 어떤 방향으로든 재개된다.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는 올해 미국 금리정책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질서 있게 이뤄질지, 합의 없는 ‘노딜’ 방향으로 갈지도 브렉시트 예정일인 다음달 29일 정해진다.

다만 상당수 전문가는 미·중 무역분쟁이 추가로 악화되지 않고 중국 경기부양책 효과에 힘입어 중국 경제지표가 시장 예상대로 3월 이후 개선세를 보인다면 신흥국에 여전히 투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동준 KB증권 수석전략가는 “중국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완화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있어 중국 경제는 2분기 중 저점을 찍을 전망”이라며 “중국의 경기부양 효과로 경제지표 개선이 가시화될 경우 아시아와 여타 신흥국 경기도 긍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중국과 신흥국 주식은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아직 불안정한 경제지표로 당분간은 불안한 모습 을 보일 수 있다”며 “1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려는 투자자는 1분기 조정시 신흥 시장 매수 기회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