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 직군은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산정하기가 어려운 일반사무직이 가장 많았다.

11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상위 600대 기업(2017년 기준)을 대상으로 포괄임금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한 기업 195개사 가운데 113개사(57.9%)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했다고 대답했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연장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하거나 정액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울 때만 인정하도록 하는 이 제도가 남용되고 있다고 보고 시정을 위한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포괄임금제 적용 직군은 일반 사무직이 94.7%(중복응답)로 가장 많았다. 기업들은 포괄임금제를 시행하는 가장 큰 이유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60.2%)는 점을 꼽았다. 이어 △임금계산의 편의(43.4%) △기업 관행(25.7%) △상시적인 연장·휴일근로(23.0%) △인건비 부담 축소(8.0%) 등의 순이었다.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기업 가운데 70.8%는 정부의 포괄임금제 원칙적 금지 방침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 응답은 29.2%에 그쳤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무에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86.3%), 실근로시간 측정 과정에서 노사 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52.5%)는 게 주된 반대 이유였다.

한경연은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해 재량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확대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은 1998년 기획, 분석, 조사 등의 업무를 하는 사무직근로자는 자신의 근로시간을 재량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해 재량근로시간제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작년에는 노동기준법을 개정하면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1075만엔(약 1억1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에게는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도 도입했다.

추광호 한경연 일자리전략실장은 “기업 현장에서는 불가피하게 포괄임금제를 시행하는 사례가 많다”며 “현실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