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대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법인세(2018년 실적분)가 미국 기업보다 무거워진다는 건 두 나라가 기업 조세정책에서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2017년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미국은 이듬해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크게 낮춘 반면 한국은 22%에서 25%로 올렸기 때문이다. “법인세를 낮추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조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가 더 중요하다”며 법인세 인상을 강행했다. 그 짐은 우리 기업이 떠안게 됐다. “(법인세 인상 여파로) 무거워진 몸으로 어떻게 다이어트에 성공한 해외 기업들과 싸울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목소리가 재계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인텔 법인세 80% 줄어들 때, 삼성은 20% 늘어…"이래서 경쟁하겠나"
역전된 한·미 법인세 부담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산정한 ‘한·미 주요기업 법인세 부담률 비교’ 자료에 따르면 미국 주요 기업의 법인세 부담률은 일제히 떨어진 반면 한국 기업들은 대폭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반도체 한국’을 이끈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법인세 부담률(연결재무제표 기준)은 각각 27.5%와 27.2%에 달한다. 2017년보다 각각 2.6%포인트와 6.4%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1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의 4분의 1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는 얘기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법인세차감전순이익(13조4396억원→21조3410억원)이 늘어난 비율(58.8%)보다 법인세(2조7973억원→5조8010억원)가 훨씬 큰 폭(107.4%)으로 확대됐다.

이에 비해 미국의 대표 반도체 업체인 인텔은 지난해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이 14.6% 늘었지만 세율 인하 등에 힘입어 법인세는 78.9% 줄어들었다. 인텔의 법인세 부담 비중은 9.7%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의 1 수준이다.

인텔뿐만 아니라 알파벳(53.4%→12.0%) 마이크로소프트(56.8%→16.0%) 페이스북(22.6%→12.8%) 아마존(20.2%→10.6%)의 법인세 부담률도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네이버(35.6%→43.4%) LG화학(21.1%→21.7%) 등 법인세 부담이 커진 국내 대기업과 대비된다.

법인세 부담률은 법인세차감전순이익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국내 기업이 실제 내는 법인세는 개별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데다 각종 공제·감면을 적용하고 이월결손금을 빼주기 때문에 통상 법인세 부담률을 계산할 때보다 적게 나온다.

“법인세, 기업경쟁력 강화에 써야”

미국과의 법인세 부담률 역전현상이 일어난 만큼 법인세 인하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계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인상한 법인세를 1년 만에 다시 내리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투자 등에 대한 감면 및 공제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법인세는 세율에 따라 글로벌 투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인소득세와 달리 세계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며 “한국만 법인세를 인상한 탓에 국내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 외국인 투자가 줄고 기업 경영이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법인세로 거둬들인 돈의 상당 부분을 해당 산업 발전 등을 위해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이 올해 내는 법인세는 10조원을 훌쩍 넘길 전망이다. 전체 법인세의 20~30%가량을 2개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부가 반도체 연구개발(R&D)에 배정한 예산은 연간 314억원(2017년 기준)에 불과하다. 2009년 1003억원에서 8년 동안 70% 가까이 줄였다. “돈 잘 버는 회사에 R&D 비용을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업계의 목소리는 다르다. 생태계 구축은 기업과 정부가 함께해야 할 몫이란 지적을 내놓는다. 반도체 핵심 부품과 장비의 국산화율은 20%에 그칠 정도로 취약한 게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로부터 거둔 법인세가 소위 ‘퍼주기식 복지’의 재원 역할만 해선 안 된다”며 “정부도 반도체 자동차 등 핵심 산업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법인세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헌/고재연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