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스포츠 브랜드 ‘르까프’를 운영하는 중견 패션기업 화승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놓고 대주주인 산업은행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 화승에 의류·신발 등 물품을 공급한 협력업체 50여 곳이 대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하면서 연쇄 피해까지 우려되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화승은 지난달 31일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법원은 신청 하루 만에 채권 추심 및 임의적 자산 처분을 막는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이달 내 화승 채권자들로부터 채권액 신고를 받을 계획이다. 화승 채권액은 총 2300억원가량으로, 이 중 2200억원이 매출채권을 비롯한 상거래채권으로 알려졌다. 나머지는 은행담보채권이다.
실패로 끝난 産銀 '선제적 구조조정 1호' 화승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모든 채무가 동결되기 때문에 화승은 재무상 어려움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 다만 상거래채권이 동결되면 어음으로 대금을 받는 협력업체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업계에 따르면 화승은 지난해부터 1차 납품업체 등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1000억원가량의 어음을 발행했다. 이에 따라 피해 규모가 큰 10여 개 납품업체 대표들은 지난 6일 긴급 채권단 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모색했다.

업계에선 화승의 대주주인 산은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화승을 인수한 후 잇단 경영실패로 법정관리를 자초했다는 것이 납품업체들의 주장이다. 산은은 2015년 KTB PE와 함께 설립한 KDB KTB HS 사모투자합자회사를 통해 화승 지분 100%를 인수했다. 여기엔 화승인더스트리, 화승네트웍스 등 화승그룹 계열사들이 후순위 투자자 자격으로 투자했다. 당시 중견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한 산은의 ‘1호 프로젝트’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산은 인수 이후 화승 경영난은 더욱 심화됐다. 산은 인수 직전인 2015년 38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이듬해 -191억원으로 적자전환한 후 2017년엔 -256억원으로 손실폭이 커졌다. 업계에선 산은이 부실 자산을 처분하고 비용을 감축하는 등 사모펀드식 구조조정에만 몰두하면서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단기차입금을 상환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했다”며 “화승이 어려워진 건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매출이 감소하고 케이스위스와 머렐 등 해외 브랜드 사용을 위한 라이선스 비용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경영상 어려움을 겪던 화승이 1000억원가량의 어음을 발행했음에도 산은이 이를 방치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업체 사장은 “산은이 화승의 대주주이기 때문에 어음 거래를 했다”며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산은이 특별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은 PE실 관계자는 “화승의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선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협력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산은도 뾰족한 지원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협력업체 대금 지급을 위해 화승에 특별 지원을 할 경우 부실기업에 ‘퍼주기식 지원’을 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어서다. 또한 특정 업체에 혜택을 준다는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은은 협력업체 대금 지급을 위한 특별 자금 지원은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황정환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