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최소화…이사해임 카드 접고 한진칼 정관변경만 주주제안
단기차익 토해내는 '10%룰'에 대한항공은 적극적 주주권 행사 않기로


국민연금이 1일 한진그룹에 '최소한의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정하는 과정에서 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한 이래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는 첫 '경영 참여' 사례라는 상징적 의미를 살리면서 기금의 '수익성'이란 최종 목적을 달성하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1.56%를 가진 2대 주주이며,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 7.34%를 확보한 3대 주주다.

이날 열린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4시간이 넘는 격론 끝에 적극적 주주권과 관련해 대한항공과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을 따로 분리해서 행사하기로 결론 났다.

한진칼에 대해서는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되 대한항공은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 방법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해임이나 사외이사선임 및 추천 등 강력한 카드는 아예 꺼내지 않았다.

단지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으로 정관변경만 추진하기로 했다.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처음으로 휘둘렀다는 명분만 챙겼을 뿐 실질적 경영 참여에는 거리를 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날 회의서 한진그룹 경영진 일가의 일탈행위로 주주가치가 훼손된 만큼 최소한의 상징적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해 오너 리스크를 해소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다수의 찬성의견과,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는 기업 경영권과 자율권 침해 우려가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이는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요구수준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오는 3월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이사 연임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나아가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 등의 이사직 수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이사해임', 총수 일가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사외이사선임 및 후보 추천' 등 다양하고 현실적인 주주제안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이렇게 신중한 행보를 보인 데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와 행사범위 검토를 맡겼던 기금운용위 산하의 주주권행사 전문그룹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논의결과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수탁자책임위 다수 위원은 애초 예상과 달리 이사해임 등 적극적 형태의 경영 참여형 주주권 행사에 반대의견을 많이 냈다.

지난 23일 1차 회의에서 수탁자책임위는 총 위원 9명 중에서 대한항공 경영 참여 주주권행사에 대해서는 찬성 2명, 반대 7명이었고, 한진칼에 대해서는 찬성 4명, 반대 5명이었다.

수탁자책임위는 29일 2차 회의에서도 1차 회의 때와 같이 경영 참여 주주권행사에 반대의견을 그대로 유지한 데다,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연임에 대한 반대의결권 행사에 관해서도 판단을 유보하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런 수탁자책임위와 기금위의 결정에는 '10%'에 따른 단기매매차익 반환 등 기금 수익성 악화의 우려가 반영됐다.

자본시장법상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는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1주 변동 때 5일 이내 공시해야 하고, 6개월 이내 발생한 단기 매매차익을 기업에 반환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을 보유 중인 대한항공에 대해 경영 참여를 하면 100억원 이상의 단기매매차익을 토해내야 하는 등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이날 기금위에서 한진칼에 대해 최소한의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한진칼의 지분보유 비율이 10% 미만으로 이런 '10%룰'의 적용을 받지 않아 단기매매차익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한진 경영참여 명분·실리 두마리 토끼사냥
국민연금, 한진 경영참여 명분·실리 두마리 토끼사냥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