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생산능력 사상 첫 '뒷걸음'…"L자형 장기침체 가능성"
경기지표 추락이 심상치 않다. 정부는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애써 주장하지만 정부 스스로 발표하는 지표마다 과거 최악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폭(9만7000명) 금융위기 이후 최저, 제조업 설비투자 9년 만에 최악, 공장 가동률 외환위기 이후 최저 등이 대표적이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2018년 12월 및 연간 산업활동동향’에는 급기야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지표가 등장했다. 현재의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6개월 후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작년 6월부터 12월까지 7개월 연속 동반 하락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1차 오일쇼크’ 영향권이었던 1971년 7월부터 1972년 2월까지 8개월 연속 동반 하락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지표가 환란과 금융위기 이후 최악으로 치닫더니 급기야 1970년대 오일쇼크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경기가 회복 기미 없이 저점 상태에 장시간 머무는 ‘L자형 침체’에 빠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경기지수 46년 만에 최장 하락

작년 12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1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이 지수는 작년 4월부터 9개월 연속 뒷걸음질쳤는데, 이는 외환위기 때인 1997년 9월부터 1998년 8월까지 12개월 연속 하락한 이후 최장기간이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5로, 이 역시 전달보다 0.2포인트 줄었다. 작년 6월부터 7개월 연속 하락세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동행종합지수에서 과거 추세를 제거하고 현재 경기 순환만 보는 것이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선행종합지수에서 추세 변동분을 제거한 지표로 향후 경기 국면을 파악하고 전환점을 단기 예측하는 데 이용된다. 두 지수 모두 100을 기준으로 그 미만이면 추세에 비해 실제 경기가 좋지 않거나(동행) 좋지 않을 것(선행)이라고 해석한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7개월 연속 동반 하락한 기록을 찾으려면 금융위기, 외환위기를 거슬러 오일쇼크 때까지 가야 한다. 1973년 터진 1차 오일쇼크 직전 국제 유가 상승으로 경기가 얼어붙었는데, 1971년 7월부터 1972년 2월까지 두 지수가 8개월 연속 동반 하락한 적이 있다. 외환위기 때에도 6개월(1997년 9월~1998년 2월), 금융위기 때는 5개월(2008년 4~8월) 연속 동반 하락한 게 전부였다.

김보경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1970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뒤 경기 순환 사이클상 지표가 첫 저점(1972년 3월)을 찍은 이후부터 보면 두 지수가 7개월 연속 동반 하락한 것은 사실상 처음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침체 장기화되나

지난해 전 산업 생산은 전년보다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0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김 과장은 “광공업과 건설업 부진이 전체 산업생산 증가세를 약화시킨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제조업이 포함된 광공업 생산은 전년보다 0.3% 증가했다. 2017년 증가폭(1.9%)에 비해 크게 위축된 것으로 2015년(-0.3%)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표다. 건설투자(이미 공사가 이뤄진 것 기준)는 건축과 토목 모두 줄어 전년보다 5.1% 감소했다. 2011년(-6.4%)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지난해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4.2% 감소했다. 금융위기 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반도체 설비 조정이 투자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작년 12월 반도체 생산은 전월 대비 4.5% 줄었고, 자동차 생산도 같은 기간 5.9% 감소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동행지수 및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계속 같이 내려가는 걸 보면 경기는 이미 고점을 지나 하락 중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는 “공장 가동률이 점점 떨어지는데 앞으로 반등할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며 “L자형 침체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재정을 풀고 있는데 오히려 이로 인해 구조조정돼야 할 기업들이 버티고 있어 L자형 침체가 길어질 우려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태훈/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