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주인 맞을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 현대중공업이 31일 산업은행과 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도크에서 선박 건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 새주인 맞을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 현대중공업이 31일 산업은행과 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도크에서 선박 건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권오갑 부회장은 평소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려면 ‘빅2’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해왔다. 권 부회장은 “중국과 일본 조선사가 몸집을 더 불리기 전에 빅2 재편을 서둘러야 한다”고도 했다. 2014년부터 자산 매각 등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선 배경이다. 세계 1위 조선사(수주잔량 기준)인 현대중공업이 2위인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글로벌 조선시장의 20%를 차지하는 매머드급 조선사가 탄생한다.
'제살깎기' 수주경쟁 없앨 빅2 체제…한국 조선 르네상스 오나
현대重·산은 합작법인 신설

산업은행은 31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인수합병(M&A)에 관한 조건부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산은은 현대중공업지주 산하에 조선통합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신설 법인의 최대주주는 28%의 지분을 가진 현대중공업지주, 2대 주주는 산은(지분율 18%)이 된다. 조선통합법인 산하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자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도 편입된다.

현대중공업지주는 물적분할을 통해 신설 법인에 1조2500억원을 주고, 주주배정 증자를 통해 1조2500억원을 추가한다. 2조5000억원 중 1조5000억원이 대우조선에 지원되고, 나머지 1조원은 자금이 부족할 경우 추가된다. 산은은 보유 중인 대우조선 주식 55.7%를 신설 법인에 현물로 출자한다.

산은은 이날 삼성중공업에도 대우조선 인수 의향을 타진했다. 입찰에 두 곳 이상 참여하지 않으면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되는 국가계약법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자구적 구조조정 중인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2월 28일까지 삼성중공업의 입찰 제안을 기다린 뒤 3월 4일 인수 낙찰자를 통보할 예정이다.

저가 수주 사라질 듯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 부문에서 확실한 통합 시너지를 내고, 신설될 조선합작법인을 종합 엔지니어링 회사로 키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가 성사되면 연구개발(R&D) 통합, 중복 투자 제거,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한 재료비 절감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술 공유를 통해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결국 원가 절감이 가능해지고 수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합쳐지면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지난해 세계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71척)과 VLCC(40척) 가운데 현대중공업그룹은 각각 25척과 13척을 수주했다. 대우조선(LNG 운반선 18척, VLCC 16척)의 수주실적을 합치면 LNG 운반선 시장 점유율은 60.6%, VLCC는 72.5%에 달한다. 현대중공업(11개)과 대우조선(5개)을 포함해 16개 도크(배를 건조하는 작업장)를 갖추고 직원 수도 2만5000명에 달해 규모 면에서 사실상 경쟁 상대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함과 잠수함 등 방산 분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빅2 체제는 한국 조선업의 발목을 잡아온 ‘제살깎기’ 경쟁도 없애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조선 3사가 과당경쟁하면서 신조선가가 떨어진 측면이 적지 않은 만큼 저가 수주 관행이 사라져 조선업황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인수가 잘 이뤄진다면 세계적인 조선 공급 과잉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넘어야 할 산 많아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가 확정돼도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적자가 지속되는 현대중공업이 초대형 M&A를 감당할 만한 체력이 있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다. 수주가 회복되는 선박 시장과 달리 해양플랜트(원유·가스 시추설비) 부문 수주는 여전히 부진해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과 건설기계, 정유 등 중후장대 업종에 치우친 현대중공업그룹의 사업 쏠림 현상이 심해지는 점도 부담이다.

중국과 조선 등 경쟁국 견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과 합치려면 전 세계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매머드급 조선사 탄생이 독점 체제 논란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보형/강경민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