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폭염 때 전기요금 누진제를 둘러싼 여론이 악화하자 대규모 요금 감면책을 내놨던 정부가 이 손실을 전액 한국전력에 떠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당초 ‘한전 손실액을 보전해주는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던 데다 한전이 2012년 이후 6년 만에 적자를 기록할 게 확실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단독] 3600억 '누진제 청구서'…결국 한전이 떠안았다
‘적자 한전’ 추가 손실 불가피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8월 7일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누진제를 한시 완화했다. 작년 7, 8월에 한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1·2단계의 상한선을 100㎾h씩 높이는 방식으로 가구당 평균 19.5%의 요금을 깎아주는 게 골자였다. “냉방기 사용이 늘수록 요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누진제를 폐지하라”는 여론이 워낙 높아서다. 당시 누진제 한시 완화에 따른 부담액은 2761억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추후 집계 결과 이 금액은 36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정부가 ‘한시 전기요금 감면’ 대책을 발표하자 갑자기 사용량이 늘었기 때문이란 게 한전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정책 변화에 따른 손실이 모두 한전 몫이 됐다는 점이다. 산업부는 당시 폭염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전에 과도한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비용을 분담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에너지 및 자원사업에 대한 특별회계기금이나 정부 예비비를 전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 손실액을 보전하기 위해 2019년도 예산안에 반영했으나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막판에 전액 삭감됐다”며 “왜 삭감됐는지는 이유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수급자 등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전기요금도 추가 감면했는데, 이것만큼은 한전에 넘기지 않고 정부 예비비를 썼다는 점을 감안해달라”며 “이 금액만 총 350억원가량”이라고 덧붙였다.

전기요금 인상 부메랑 되나

정부가 ‘폭염 청구서’를 한전에 떠넘기면서 작년 상반기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한 한전은 추가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하분은 그 금액만큼 회계상 매출 할인 및 영업손실로 반영된다”고 말했다.

한전은 2015년과 2016년에도 누진제를 한시 완화하면서 각각 1300억원과 4200억원을 부담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엔 정부가 손실 보전을 약속하지 않았던 데다 해당 연도에 1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한전 영업이익은 새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내세운 2017년 4조원대로 꺾였고 작년엔 6년 만에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을 게 확실시된다.

한전 적자는 전기요금 인상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한전은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 따른 안전점검 강화로 원전 이용률이 대폭 떨어진 2011년 1조205억원의 영업적자를 내자 이듬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6.0%, 주택용은 2.7% 인상했다. 국제 원자재값이 급등해 큰 폭의 적자를 낸 2007~200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작년에 지급한 정부 정책 비용만 6조1000억원”이라며 “원가를 반영한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와 한전은 누진제 완화 또는 폐기를 포함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3월 내놓을 계획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