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배터리(BoT·Battery of Things) 시대.’

모든 제품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시대를 넘어 모든 제품이 배터리에 연결되는 시대가 왔다. 각종 가전제품과 전자기기에 전원선이 사라지면서 배터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무선청소기, 전동공구 등 ‘힘’이 중요한 제품은 물론 블루투스 이어폰, 스마트펜 등 초소형화가 필요한 분야까지 무선이 유선 제품을 빠르게 대체하는 추세다. 무선 제품의 기술력은 배터리 성능에 달린 만큼 LG화학,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계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사라지는 선…소형 배터리 '전성시대'
배터리, 작게 더 작게

27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미국 애플의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 새 모델에 초소형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LG화학은 2016년부터 에어팟에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제품을 개발할 때부터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에 에어팟 디자인에 적합한 배터리 개발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존 블루투스 이어폰과 비교해 배터리가 들어갈 공간이 작은 에어팟 디자인에 맞는 배터리를 개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LG화학이 2014년 지름 4.6㎜, 길이 32㎜의 초소형 배터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원통형 배터리에 비해 크기를 30분의 1로 줄였다. 무게도 1g 이하다. 에어팟은 연간 2800만 대가 팔리는 인기 제품이 됐다.

이어폰 무선화 추세에 맞춰 블루투스 이어폰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할 전망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도 ‘에어팟의 대항마’로 갤럭시 버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스마트폰 업체들은 아예 이어폰 단자를 없애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7부터 이어폰 단자를 없앤 데 이어 최근 중국 비보는 이어폰 단자뿐 아니라 모든 구멍과 버튼을 없앤 ‘포트리스폰’을 발표했다. 초소형 배터리는 스마트펜, 전자담배 등으로 활용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선 없어도 ‘힘센’ 제품들

배터리 성능이 좋아지면서 높은 출력을 필요로 하는 제품들도 하나둘씩 무선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무선 청소기다. 시장조사전문업체 GfK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무선 청소기 판매량이 50%를 넘어서며 유선 청소기를 추월했다.

해외에서는 전동 공구와 정원 공구 제품이 빠른 속도로 무선화되고 있다. 유선 제품에 비해 힘이 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한 제품이 나오면서다. 삼성SDI는 기존 표준 제품인 ‘18650 배터리’(지름 18㎜, 길이 65㎜)보다 에너지 용량을 50%가량 높인 ‘21700 배터리’(지름 21㎜, 길이 70㎜)를 본격적으로 양산했다. 이 덕분에 TTi, 스탠리 블랙앤드데커, 보쉬 등 전동공구 글로벌 메이저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며 2011년부터 전동공구용 배터리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에 달한다. 테슬라 재규어 등 전기차 업체들도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21700 배터리는 날개를 달았다.

배터리 업계는 원통형 배터리의 급격한 수요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삼성SDI는 중국 톈진에 있는 소형 배터리 공장에 약 4000억원을, LG화학은 중국 난징 소형 배터리 공장에 약 6000억원을 들여 증설 작업에 나섰다.

배터리 업체들의 실적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해 매출 9조1583억원, 영업이익 7150억원을 기록했다. 2004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 실적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해 전지부문에서 매출 6조5070억원, 영업이익 2134억원을 거둔 것으로 추정됐다. 매출은 전년 대비 약 40%, 영업이익은 600% 이상 늘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