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쇼인 CES는 1년 전부터 부스를 잡고 6개월 전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아이템과 테마를 연구합니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행사를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행사 열흘 전에 통보하고 준비하라고 하진 않을 거예요.”

‘한국판 CES’ 참여를 준비하는 국내 기업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오는 29일부터 사흘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한국판 CES가 전형적인 정부 주도 전시 행정이라는 불만 때문이다. “국내 기업 협회의 건의로 시작됐다”는 청와대 해명이 이런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4대 그룹 계열사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거나 기업 현실을 아예 모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잘라 말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판 CES는 국내 기업이 CES에 전시한 혁신 제품을 국내 일반인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지난주 국내 기업에 일정이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등 국내외 기업 30~40여 곳이 참여할 예정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청와대 행사로 열리니 참여하라는 통보만 받았다”며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한국판 CES가 청와대 지시로 시작됐다’는 보도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며 “CES에 참가한 국내 기업 단체가 CES에 선보인 최첨단 기술을 국내에까지 확산시키고 싶다고 먼저 건의해왔다. 대통령도 참석해주시면 좋겠다는 건의가 왔다”고 해명했다. 기업들의 의견과 건의를 수용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CES 때 기업 사이에서 한국에서도 이런 걸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전시회를 제안한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관계자는 “산업부에 제안하기 전 개별 기업으로부터 한국판 CES를 해보자는 건의를 받지는 않았다”고 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기업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A기업 관계자는 “CES 등 국내외 전시회 업무를 20년 이상 해왔지만 행사 열흘 전 전시회에 참여하라는 정부 지시는 처음”이라고 했다. B기업의 한 대관담당 부사장은 “CES는 전 세계에서 18만 명 넘는 사람이 찾아오는 글로벌 행사여서 간다”며 “대통령 행사가 아니었다면 불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CES에 선보인 제품이 아직 (한국에) 도착하지 않고 바다 위에 떠 있는데…”라며 전시회 불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소비자도 외면할 것이라는 지적이 다수였다. 국내에서 CES와 비슷한 전시회인 ‘한국전자전(KES)’이 196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어서다. C기업 관계자는 “관심있는 소비자는 이미 신문, 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 미국 CES 제품을 다 봤다”며 “새해부터 실적이 고꾸라지는 마당에 예정에 없던 비용을 쓰게 생겼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