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어려울 때 진짜 실력 나올 것" 발언 속내는

기술격차 벌일 기회?
작년 4분기부터 시장 냉각되자…업계 "삼성도 속도조절 나설 것"
삼성은 "중장기 투자계획 고수"

삼성 판매·가격전략 주목
재고 털기 위해 제품價 낮추고
후발社 '울며 겨자먹기' 동참 땐 자연스럽게 치킨게임 시작

일각선 "삼성, 시장상황 지켜볼 듯"
글로벌 반도체업계가 “어려울 때 진짜 실력이 나온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발언으로 술렁이고 있다.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이 반도체 경기가 꺾인 현 시점에 투자와 생산량을 늘려 2위권과 차이를 더 벌리는 ‘초격차’ 전략을 쓸 것으로 해석돼서다. D램에 비해 경쟁이 치열한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삼성발(發) 치킨게임이 곧 시작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삼성의 전략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주요 고객인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도 시장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재용 한마디에 반도체업계 '술렁'…삼성發 '낸드 치킨게임' 오나

삼성 “계획대로 투자한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20일 반도체 투자 규모 및 시점과 관련해 “미세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당초 계획한 큰 그림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지난해 8월 발표한 ‘2018~2020년 투자·고용 계획’에서 밝힌 반도체 투자 규모를 줄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시 삼성은 전체 투자금액(180조원)의 절반인 90조원가량을 평택 2공장 건설 등 국내 반도체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작년 4분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급랭하자 시장에서는 삼성이 ‘투자 속도 조절’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작년 말에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가 2018년 226억달러에서 2019년 180억달러로 20.4% 줄어들 것”(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이란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왔다.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면서 작년 3분기 13조6500억원에 달했던 삼성전자 DS(반도체 부품) 부문 영업이익이 작년 4분기 8조원 안팎으로 추락한 것으로 최근 확인되자 투자 축소는 기정사실처럼 퍼졌다.

업계에선 삼성이 반도체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키로 한 것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 신산업에서 고용량 메모리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이제 막 시작된 만큼 향후 반도체 시장이 한층 더 커질 것으로 보고 미리 대비한다는 게 첫 번째 해석이다. 2위권 업체들이 투자를 머뭇거릴 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삼성이 생산능력을 늘리면 훗날 반도체 시장이 ‘상승장’으로 전환할 때 점유율 격차를 벌릴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이 대(對)국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투자 규모를 축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낸드 시장 치킨게임 공포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투자 계획보다 판매 및 가격 전략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삼성이 그동안 쌓인 재고를 털어 내기 위해 제품 가격을 공격적으로 낮출 수 있어서다. 후발주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인하에 동참하면 원가 경쟁력을 갖춘 업체만 살아남는 치킨게임이 본격화된다. 실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수익성은 다소 포기하더라도 매출은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제조사들마다 재고를 떨어내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수익성 확보를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가격을 떨어뜨릴 경우 자연스럽게 치킨게임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치킨게임의 무대가 낸드플래시 시장이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빅3’가 세계 시장의 95%를 차지하는 D램과 달리 낸드는 삼성전자, 도시바, 웨스턴디지털,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5~6개 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뿐 아니라 낸드 시장에서도 시장 점유율 40%가 넘는 압도적인 1위다. 삼성이 치킨게임을 주도할 만한 위치에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과점 시장인 D램과 달리 낸드 시장은 경쟁 업체가 많은 데다 중국 업체들도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는 만큼 삼성이 치킨게임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삼성전자가 당분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시장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중 통상전쟁, 중국 정부의 반도체 담합 조사,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재판 등 활동 반경을 옥죄는 변수들이 많아서다. 올 하반기엔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관측도 삼성이 일단 시장을 지켜볼 것이라는 근거로 제시됐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