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능후 복지부 장관, 기금운용委 주재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16일 열린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에서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능후 복지부 장관, 기금운용委 주재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16일 열린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에서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주식시장에서 124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의 경영 개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7월 투자 기업에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원칙)를 도입한 국민연금은 첫 번째 타깃으로 한진그룹을 정조준했다.

국민연금은 16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와 행사 범위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조만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소집해 구체적인 주주권 행사 방안을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수탁자책임전문위 구성도 기금운용위같이 노조와 시민단체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두 회사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정해진 수순”이라고 말했다.
"한진칼·대한항공에 주주권 행사 검토"…국민연금, 경영진 교체 노리나
국민연금 경영 참여 속도전

이날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금운용위에는 총 12명의 위원이 참석했다. 안건은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와 행사 범위 검토를 수탁자책임전문위에 넘겨 경영 참여 논의를 시작할지 여부였다. 토론 끝에 표결에 부친 결과 찬성 10명, 반대 2명으로 안건이 통과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측 위원만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분위기가 이미 경영 참여로 기울었다는 뜻이다.

자본시장법상 경영 참여로 분류되는 주주권은 △임원 선임·해임 △정관 변경 △회사 합병·분할 △주식 이전·교환 등이다. 논의 결과에 따라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연임은 물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오너 일가 해임 안건도 오는 3월 주주총회에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 기금운용위 일정을 2월 초로 못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상법상 주주 제안은 주총 6주 전 해야 하기 때문에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2월 초로 기금운용위를 앞당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진칼·대한항공에 주주권 행사 검토"…국민연금, 경영진 교체 노리나
로드맵 속도 위반…시장 혼란 불가피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서 마련한 로드맵이 정한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당시 기금운용위는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은 자본시장법이 정비된 뒤 행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기금운용위가 의결할 경우 경영참여형 주주권도 행사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뒀다.

당시 정부가 정비하겠다고 한 법은 자본시장법상 10%룰과 5%룰이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을 11.7% 보유하고 있다. 10%룰에 따라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투자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꾸면 신고일 기준으로 6개월 안에 얻은 단기 차익을 회사 측에 반환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위탁을 받아 자금을 운용하는 민간 운용사들이 대한항공 주가가 많이 올라 차익을 실현하고 싶어도 이 규정에 묶여 주식을 팔지 못하게 된다. 그만큼 시장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7.34%를 보유한 한진칼은 5%룰의 적용을 받는다.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투자한 5% 이상 주주는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으면 실시간으로 공시해야 한다. 이 경우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과 매매 패턴이 시장에 공개돼 추종매매가 생겨날 수 있다. 역시 시장에 큰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이날 기금운용위에서는 이 같은 기술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금운용위원들의 분위기가 다소 격앙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며 “앞으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전문적 분석이 아닌 여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기업 총수에 대한 부정적 뉴스가 나올 때마다 법원의 판단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검토하면 대부분의 국내 상장사들이 국민연금의 간섭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