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5일 난데없이 금융감독원을 비꼬는 듯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제목은 ‘금융당국 출신 인사의 금융회사 재취업에 따른 경제적 효과’다. 금감원 출신 인사의 금융회사 재취업 시 건전성은 개선되지 않고 제재를 피하는 효과만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금융회사가 금감원 출신을 임원으로 영입해 ‘방패’로 활용한다는 세간의 인식을 뒷받침하는 분석 결과다.

금감원은 “왜 이 시점에 그런 보고서를 냈는지 의도가 불순하다”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연구 결과도 단순 추정에 불과하다”는 게 금감원의 주장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공공기관 지정에 반대하고 있다.

KDI는 이날 보고서에서 “금감원 출신이 민간 금융사 임원으로 취임하면 첫 3개월간 해당 금융사가 제재받을 확률이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16.4% 감소했다”고 밝혔다. 금융사가 부실자산 비율을 1%포인트 낮추면 제재받을 확률이 약 2.3% 줄어드는데 금감원 출신 인사를 임원으로 채용하면 이보다 약 7배의 효과가 나는 것이다. 다만 금감원 출신의 영향력은 취임 후 3개월이 지난 뒤엔 나타나지 않았다.

KDI는 “금감원 출신 인사가 취임한 이후 금융사의 건전성이 개선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며 “제재 감소 효과는 주로 현직 감독 실무자와의 인적 관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DI는 또 “미국은 금융당국 출신이 민간 금융사에 취업해도 제재 확률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며 “금감원 한 곳에 권한이 집중된 한국과 달리 미국은 여러 기관에 금융감독 권한이 나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 기관에 감독 권한이 집중되면 부당한 유착관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금감원은 KDI가 이날 이례적으로 브리핑까지 연 것을 두고 금감원을 흔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 출신 인사가 민간 금융사 임원으로 취임하면 제재 확률이 낮아진다는 건 확인되지 않은 단순 추정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금감원 내부에선 이번 KDI 보고서 발표가 공공기관 지정을 둘러싼 갈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는 작년 1월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다 1년 유예기간을 줬고 이달 말께 지정 여부를 다시 결정한다.

이와 관련해 KDI 관계자는 “외부 민원은 없었으며 순수하게 연구 담당자들의 학술적 호기심에 따라 연구해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강경민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