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스페스 영국 재규어랜드로버 최고경영자(CEO)는 10일(현지시간) 전체 임직원의 10%에 달하는 45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랄프 CEO는 “자동차업계가 지정학적 위험, 규제에 따른 혼란 및 각종 혁신기술에 직면해 장기 성장을 위한 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감원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자율주행차, 전기차, 공유기술 등에서 기회를 잡겠다”고 했다. 이 회사는 급속히 경기가 둔화하는 중국에서 판매량이 급감해 타격을 입고 있다.

세계 경기 둔화가 가시화하면서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는 글로벌 기업이 늘고 있다.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가 R(restructuring: 구조조정)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와 금융업에선 감원 및 성과급 삭감 바람이 불고 있고 항공업, 소매업 등도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아 구조조정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구조조정 바람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확산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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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 바람’ 거센 세계 車업계

제너럴모터스(GM)에 이어 포드, 재규어랜드로버 등이 재빨리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현재까지 실적은 괜찮지만 경기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를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선제 구조조정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전기차 등에 쏟아붓겠다는 구상이다.

GM은 작년 11월 고강도 비용 절감으로 올해 말까지 60억달러(약 6조7740억원)를 마련해 미래 사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메리 바라 CEO는 “자동차산업이 급변하고 있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내연기관 부문 인력은 감축하지만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 관련 인력은 계속 채용한다”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GM 포드 재규어 등은 미래차 개발에 부적절한 인력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GM은 전체 인력 중 70%가 내연기관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이를 내연기관 30%, 전기전자 70%로 바꿀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은 지난해 20년 만에 처음으로 판매량이 줄었다. 중국승용차연석회의(CPCA)는 이달 9일 2018년 승용차 판매량이 2235만 대로 2017년보다 6%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무역전쟁 등으로 경기가 나빠지자 자동차산업이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은 셈이다.

미국도 비슷하다. 미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1730만 대(추정)로 2017년보다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6대 자동차회사 중 크라이슬러를 제외한 업체 모두 판매량이 감소했다. GM은 전년 대비 1.6%, 포드는 3.5% 줄었다.

테슬라 등 전기차의 약진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선 전기차가 36만 대 넘게 팔려 2017년보다 80.8% 폭증했다. 테슬라 모델3가 13만9782대 팔려 전기차 시장의 39%를 차지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년 전만 해도 내연기관차 수요는 2022년이나 그 이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확산하는 구조조정 바람

미국 월가에선 자동차와 금융업종에서 시작된 구조조정 바람이 전자와 운송, 소매업 등으로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둔화의 영향을 받는 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애플이 중국에서의 매출 부진을 이유로 실적 전망치를 대폭 낮춘 뒤 세계 전자부품 업체들은 초긴장 상태다. 애플이 올해 1~3월 아이폰 생산량을 당초 계획보다 10% 정도 줄이라고 협력업체에 통보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경기 영향을 많이 타는 운송업과 소매업에서도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아메리칸에어라인과 델타항공, 페덱스는 각각 지난해 4분기 실적 전망치를 낮추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페덱스의 프레드 스미스 CEO는 “미·중 무역갈등이 여러 어려움 중 가장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소매업종에선 메이시스백화점과 콜스가 부진한 실적을 경고했다. 메이시스는 작년 12월 중순부터 매출이 둔화됐다며 이익 전망치를 18% 낮췄다. 또 티파니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도 중국인 소비 감소로 타격을 입고 있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다’며 세계 경제의 올해 성장률이 2%대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무역량 및 산업 생산 감소, 급증한 부채 등이 기업 생존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장창민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