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형 금융회사 가운데서도 인력 구조조정과 성과급 삭감 등에 나서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곳이 늘고 있다. 대부분 자산시장이 지난해 추락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진 데다 시장 생태계 변화로 기존 금융 방식의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어서다. 수학 알고리즘을 활용한 인공지능(AI) 투자가 늘어나는 것도 감원을 부르는 요인이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블랙록은 500여 명의 직원을 감원하기로 하고 이날부터 절차에 들어갔다. 감원 규모는 전체 고용 인원 1만4000명의 3% 수준으로 2016년 이후 최대 구조조정이다.

로버트 캐피토 블랙록 사장은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다 투자자의 선호가 바뀌고 있어 금융 생태계가 복잡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AI를 활용한 자산운용이 빠르게 확산하는 데다 지난해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올린 일부 헤지펀드와 퀀트펀드 등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커진 흐름을 거론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블랙록은 지난해 4분기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3% 줄어든 것으로 추산했다. 작년 3분기 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2% 늘어나는 데 그쳐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자체 수익보다 법인세 감면 등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국 모건스탠리 역시 채권과 리서치 부문 등에서 실적이 저조한 직원의 감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헤지펀드 AQR캐피털매니지먼트도 실적 악화를 이유로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유럽본부 인원을 줄일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이익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산되자 성과급 총액을 10% 줄였다.

국민연금이 해외 주식·대체자산 운용 위탁기관으로 선정한 미국 스테이트스트리트은행은 고위임원진을 15% 줄이기로 했다. 보스턴에 본부를 둔 이 은행의 글로벌 수탁서비스 규모는 33조달러에 달한다. 108개국에서 자금결제·자산보관·회계처리·운용지원 등과 같은 투자자산관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가 잇따라 감원과 성과급 삭감에 나서는 것은 지난해 주요국 증시가 급락하면서 실적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와 퀀트펀드 등 새로운 투자처에 관심을 두는 투자자가 늘면서 자금 유입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미국 다우지수는 지난해 5%, S&P500지수는 6% 이상 떨어졌다. 리서치회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작년 1~11월 미국 자산관리 상품에 유입된 신규 투자금은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 같은 기간보다 많이 감소했다.

세계 금융업계가 AI를 이용한 투자를 잇따라 도입하는 것도 인력 수요가 줄어드는 이유다. 블랙록은 지난해부터 AI를 이용한 자산운용 규모를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업계가 비용 절감을 위해 업무 전반에 신기술을 도입하고 있다”며 “영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금융회사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앞두고 고용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