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기 판결'로 해석…재판결과 회장·행장 선임에 영향 미칠 듯

고위 공직자나 주요 고객의 자녀·친인척을 특혜 채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법정구속되자 회장과 행장 등이 관련 재판 중인 다른 시중은행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조용병 신한금융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재판 결과가 연임 가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이재희 판사는 10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행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은행권은 법원이 이 전 행장을 '도주 우려'라는 이유로 법정구속한 것을 일종의 '본보기 판결'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광구 구속에 은행권 초긴장…조용병·함영주 연임 '암초'되나
우리은행은 공식적으로 내놓을 입장이 없다고 하지만 작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다.

전직이지만 이 전 행장과 이번에 재판을 받은 임직원들이 한 행위가 법원으로부터 "수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공정한 채용업무를 방해한 사건"이라고 규정된 것 자체가 불명예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2017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은행권 채용 비리 사태의 시발점이었다.

이 전 행장이 자진 사임한 후 우리은행을 맡게 된 손태승 행장은 채용 비리의 '얼룩'을 지워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수사 대상 임직원을 업무에서 배제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 11월 인사 때엔 채용 비리 혐의로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임원을 내보냈다.

함영주 행장은 올해 3월 연임 여부에 이번 판결이 암초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함 행장은 지난해 6월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돼 8월부터 재판을 받고 있다.

함 행장은 2015년 신입 공채에서 지인인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로부터 아들이 하나은행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인사부에 이를 전달하며 잘 봐줄 것을 지시해 서류전형 합격자 선정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서류전형 이후 합숙 면접에서는 자신이 인사부에 잘 봐주라고 한 지원자들이 통과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면 이들을 합격시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함 행장은 2015년과 2016년 공채를 앞두고 인사부에 "남녀 비율을 4대1로 해 남자를 많이 뽑으라"고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함 행장 임기는 올해 3월 주주총회까지다.

그의 1심 판결은 올해 말에 이뤄질 전망이다.

하나은행 측은 함 행장이 채용과정에 간여한 정도가 다른 행장들에 비교해 적고, 사기업 수장의 재량권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판이 함 행장 연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행장에게 내려진 무거운 판결이 함 행장 연임 관련 여론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전 행장 재판부는 판결에서 은행 자체가 공공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우리은행이 가지는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면 은행장의 재량권이 무한으로 확대될 수 없고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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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의 입지도 줄어들게 됐다.

조 회장은 신한은행장으로 있던 2015년 상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까지 지원자 30명의 점수를 조작하고, 남녀 성비를 맞추기 위해 지원자 101명의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조 회장은 2016년 9월 라응찬 전 회장(80)으로부터 조카손자 나 모 씨에 대한 청탁을 받고 부정 합격시킨 의혹도 받고 있다.

조 회장은 이런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만큼 사안이 중대하다고 본 점을 고려했을 때, 법원에서 조 회장의 혐의 사실을 인정한다면 법정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조 회장의 1심 판결은 연말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신한지주의 차기 회장 선출 절차는 12월에 진행된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지 않은 이상 이번 재판 결과가 조 회장의 연임 가도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재판에 충실히 임해 최대한 소명하고 법원의 판단을 구하겠다"라고 말했다.

KB금융지주는 윤종규 회장이 불기소 처분된 이후 한숨 돌렸지만, 국민은행 임직원이 여전히 법정에 서 있어 마냥 안심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 인사팀장 오모 씨와 전 부행장 이모 씨, 인력지원부장이던 HR총괄 상무 권모 씨가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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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 전 HR본부장에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고, 양벌규정에 따라 국민은행에도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이들은 항소 후 2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국민은행은 이번 이광구 전 행장 재판 결과가 2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 전 행장만을 보고 판결한 것 같지가 않다"며 "비슷한 건으로 재판 중인 사람은 당연히 현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구속감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