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수주' 우려 커지는 UAE원전

'脫원전 약점' 잡힌 한국에 "입찰가격 30% 이상 낮춰라"

이달 말 입찰 앞두고 한국 찾아와 사실상 '저가 수주' 요구
UAE측, 경쟁국들 한국 약점 어필하는 상황 교묘히 이용
'탈원전 탓에 수주 실패' 비판 의식한 靑, 무리한 계약 종용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라카 원전 장기정비계약(LTMA)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바라카 원전 정비계약은 문재인 정부의 ‘1호 원전 수출’이 유력했던 사업이다. 수십조원 규모에 이르는 건설 계약보다는 못하지만 앞으로 10~15년간 2조~3조원 규모의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해 ‘알짜 사업’으로 꼽힌다. 한국은 바라카 원전 건설은 물론 운영지원계약(OSSA)까지 따낸 상태여서 정비계약은 ‘따놓은 당상’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현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헝클어졌다. UAE가 정비계약을 한국과의 수의계약에서 돌연 국제 경쟁입찰로 바꾼 데 이어 최근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낮은 가격으로 압박하고 있어서다. UAE는 지난주에도 무함마드 알하마디 UAE 원자력공사 사장을 한국에 파견해 ‘한국이 계약자로 선정되려면 가격을 30% 이상 낮게 써내라’는 메시지를 정부와 원전 공기업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로선 저가 수주를 하자니 실익이 없고 계약을 포기하자니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실패라는 비판에 직면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UAE, 원전 장기정비 경쟁입찰로 바꾸더니…이번엔 '헐값 계약' 압박

‘탈원전’ 약점 잡힌 한국, 협상 난항 예상

LTMA 계약이 꼬이게 된 1차적 원인은 ‘탈원전’이라는 약점을 잡힌 탓이라는 게 대다수 원전 전문가의 지적이다. 국내에서는 원전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정책을 펴면서 해외에선 원전 세일즈를 하는 모순을 UAE가 적극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원전을 하면 원전산업 기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사업 발주 국가로서 그런 나라에 자국의 원전을 믿고 맡길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원자력업계의 한 관계자는 “UAE가 협상 과정에서 탈원전에 따른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지만 우리 경쟁국인 미국과 영국이 한국의 약점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우리 스스로 상황을 어렵게 만든 측면도 있다.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하던 2017년 10월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세계원자력장관회의에 참석해 “한국은 에너지 전환 정책을 펴고 있다”고 홍보했다. UAE 입장에서 한국의 불안 요소인 탈원전 정책을 우리 스스로 부각시킨 셈이다.

전문가 “저가 수주는 피해야”

그동안 정부는 우리가 LTMA 계약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낙관해왔다. 바라카에 짓고 있는 원전이 한국의 독자 모델인 ‘APR1400’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전KPS는 APR1400 노형을 3년 넘게 유지 보수한 실적이 있다”며 “경쟁국인 미국과 영국은 이런 경험이 없는데 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UAE가 ‘가격 후려치기’를 시도하면서 자칫 적자 계약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UAE 측 요구대로 한국이 30% 이상 낮은 금액을 써내 낙찰되면 최종 계약액은 1조원 밑으로 떨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적자가 불가피한 터무니없는 가격 수준”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협상에 임하는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전 공기업은 수주를 따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LTMA 계약을 따내라’는 가이드라인이 윗선에서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저가 수주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할 경우 후폭풍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저가 계약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APR1400 노형 원전의 유지 보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계약을 놓쳐도 상관없다는 자세로 당당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는 탈원전 정책을 수정해야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 교수는 “탈원전 정책을 ‘감(減)원전’ 정도로만 궤도를 고쳐도 상대국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나라로의 원전 수출을 원활히 추진하고 국내 원전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탈원전 정책의 속도를 늦추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민준/조재길 기자 morandol@hankyung.com


「원전 정비사업 입찰 관련 UAE의 '헐값계약' 압박 등 의혹」관련 반론보도

한국경제는 지난 1월 7일과 8일「탈원전 약점 잡은 UAE, 정비가격 후려치기」등 제목으로, '탈원전' 정책에 따라 우리 정부가 원전 관련 해외사업 수주에 있어 헐값계약 압박 등 불리한 정황이 불거지고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수원과 한전KPS는 2019년 1월 초 UAE 원자력공사 사장이 방한해 한수원 등과 LTMA 관련 협의를 한 적은 있으나 입찰참여자인 한수원 또는 한전KPS에게 가격을 정상가보다 30%낮게 써내라고 요구한 바 없음을 알려왔습니다. 아울러 LTMA 계약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악영향을 받았다는 명백한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UAE 정비계약 체결과 관련 별도의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님을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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