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결정 방식이 32년 만에 바뀐다.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 주도로 결정해온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공익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것이 골자다. 결정 기준도 대폭 수정된다. 그동안 생계비, 소득분배율 등 받는 사람만 고려했던 결정 기준에 기업 지불능력,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등 주는 사람의 사정과 객관적인 경제 상황도 반영된다. 최저임금을 복지정책으로 여겨온 정부가 늦게나마 ‘시장 임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저임금 결정기준 키 쥐는 공익위원, 정부 단독 아닌 노·사·정이 공동추천
최저임금 과속 인정한 정부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에 나선 것은 공정성과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이후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와 사용자단체가 추천한 노사 위원 9명씩 18명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청한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32차례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표결 없이 합의를 이룬 것은 일곱 차례에 불과했다. 그나마 표결에 부친 25차례 중에서도 노사가 모두 참석한 경우는 8회에 그쳤다. 사실상 정부가 선임한 공익위원들이 정부 뜻대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정해왔다는 얘기다.

정부는 현재 △근로자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만 반영하게 돼 있는 결정 기준에 고용수준, 기업의 지불능력, 경제성장률을 포함한 경제 상황을 추가하기로 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가 객관적인 데이터를 놓고 논의해야 하는데 지난 30년간 그렇게 운영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온 만큼 (앞으로는) 근로자 생활보장과 고용·경제 상황을 보다 균형 있게 고려해 합리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지난 2년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문제점과 불합리함을 인정한 것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현행 최저임금위원회는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뉜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새 결정 기준을 바탕으로 이듬해 최저임금 인상률의 상·하한을 정해주면 노사공익위원들이 인상률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결정위원회 참여주체도 기존 대기업 중심의 경제단체와 양대 노총 외에 청년, 여성, 비정규직, 중소·중견기업, 소상공인 대표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구간설정위원회 ‘옥상옥’ 우려도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서 그동안 정부 독점으로 추천했던 공익위원을 노사와 공동으로 추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9명으로 구성될 구간설정위원회 위원을 노·사·정이 3명씩 추천하거나 노·사·정이 5명씩 추천한 뒤 노사가 3명씩 상대방 위원을 순차배제하는 식이다.

논의 구조를 이원화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이지만 구간설정위원회 구성 방식을 놓고는 논란이 예상된다. 개편안의 구간설정위원회 구성 방식은 노동위원회 방식과 같다. 노·사·정이 각기 일정 수의 전문가를 추천하고 노와 사가 부적합하다고 보는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노동 관련 사건이나 분쟁의 심판, 조정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노동위원회에는 적합하다. 하지만 최저임금 구간설정위원회를 두는 취지는 전문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정부안대로라면 구간설정위원회는 결정위원회에 앞서 소모적인 노사 간 이해대립을 한 번 더 겪는 ‘옥상옥’이 될 공산이 크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순차배제 방식은 이념의 극단성을 배제하는 효과는 있다”면서도 “최저임금 결정은 이념이 아니라 전문성과 객관성이 생명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최종석 노동전문위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