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개봉된 홍콩 영화 ‘정무문’. 주인공 첸(이소룡 분)은 정무문 창시자이자 태극권 사부인 허영가의 사망 소식에 복수를 다짐한다. 홍백파의 도장을 찾아간 첸은 그동안 사부에게 배운 현란한 발차기와 쌍절곤으로 관원들을 쓰러뜨린다. ‘도장깨기’였다. 식품업계에도 도장깨기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해가는 기업이 있다. 국내 최대 식품회사 CJ제일제당이다. 과거 대대적인 할인과 물량 공세로 만두와 식용유 시장을 석권한 CJ제일제당은 최근엔 포장김치 시장에서도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해당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경쟁사들은 “좁은 국내 시장에서 출혈경쟁을 부추기고, 시장 질서를 해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반면 CJ제일제당은 “경쟁 시장에서 품질과 마케팅을 통해 점유율을 높여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기업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CJ제일제당 도장깨기 전략 또 통할까
비비고김치, 종가집 턱밑까지 추격

올해 대형마트에서 가장 치열한 판매경쟁이 펼쳐진 품목은 단연 포장김치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김치와 대상의 종가집이 전쟁을 벌였다. 결과는 비비고김치의 급성장으로 나타났다.

25일 시장조사회사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리테일 시장에서 비비고김치의 점유율은 40.0%로 부동의 1위 종가집(42.9%)을 바짝 추격했다. 작년 12월 종가집과 비비고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49.8%와 28.1%였다. 불과 10개월 만에 격차가 21.7%포인트에서 2.9%포인트로 좁혀졌다.

CJ제일제당이 대대적인 할인 공세를 퍼부은 결과라는 게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올 들어 마트에서 포장김치 할인 행사가 1년 내내 계속됐다”며 “지금도 비비고김치를 중심으로 ‘1+1 행사’를 하거나 가격을 대폭 할인하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포장김치 시장 1위인 대상과 3, 4위인 동원F&B, 풀무원은 연합해 맞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CJ의 자금력에 단독으로 맞서긴 어렵다”며 “대상이 2주간 맞불 행사를 하면 동원과 풀무원이 1주일씩 번갈아 판촉에 나서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식품업계에선 ‘CJ의 도장깨기’가 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만두 식용유 시장도 석권

CJ제일제당은 과거 냉동만두와 식용유 시장에서도 오랜 기간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던 ‘전통의 강자’들을 제쳤다. 지금은 점유율 차이가 2~3배에 이른다.

해태제과의 고향만두가 대표적이다. 해태 고향만두는 1987년 출시 후 20여 년간 50% 넘는 점유율로 국내 냉동만두 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CJ제일제당이 2013년 비비고만두를 출시하고 만두를 글로벌 전략 상품으로 키우기 시작하면서 왕좌를 내줬다. 10월 기준 비비고만두의 시장 점유율은 44.4%로 해태 고향만두(15.6%)를 약 3배나 앞서고 있다.

사조해표가 1위였던 식용유 시장에서도 CJ제일제당은 백설 브랜드로 추격에 나서 지난해 처음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2016년 CJ백설과 사조해표의 식용유 시장 점유율은 각각 30.6%, 32.1%였지만 올해 10월 기준으로는 40.1%, 20.2%로 격차를 두 배로 벌렸다.

CJ제일제당의 이런 전략이 모두 성공한 건 아니다. 오뚜기가 지배하고 있는 카레 시장에선 2009년 인델리 커리 7종을 내놓으며 ‘오뚜기의 카레왕국’에 도전장을 냈지만, 3~5%의 점유율을 보이다 2013년 카레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식품업계에선 포장김치에 이어 CJ제일제당의 다음 공략 대상 품목이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이란 얘기가 나온다. 포장김치 시장에서 지배력을 확고하게 다진 뒤 국내외 시장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는 조미김에 역량을 투입할 것이란 관측이다.

CJ제일제당은 올 8월 국내 최대 김 전문기업인 삼해상사의 지분 49%를 인수하며 시장을 공략할 채비를 마쳤다. 삼해상사는 1968년 설립돼 국내 최초로 조미김을 개발한 회사다.

이에 따라 양반김으로 국내 조미김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동원F&B와 풀무원, 대상 등은 초긴장 상태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