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채권, 원유 등 투자자산 가격이 동반 폭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미국 뉴욕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시장이 소용돌이칠 때마다 안전자산으로서 힘을 발휘하는 금값만 강세다. 그만큼 투자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경기 둔화 우려가 상당한데도 미 중앙은행(Fed)이 내년 두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자 예상보다 성장세가 더 꺾일 수 있다는 불안이 고조되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더 커진 美 경기 둔화 우려에 주식·채권·원유 '도미노 추락'…金만 '나홀로 강세'
20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464.06포인트(1.99%) 내린 22,859.60에 마감했다. 지수는 한때 600포인트 넘게 급락하며 14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지난 5거래일 동안의 지수 낙폭은 1700포인트에 달한다. S&P500지수는 1.58%, 나스닥은 1.63% 하락했다. 최근 CNBC방송은 “12월은 일반적으로 수익률이 좋은데 올해는 1931년 대공황 때 이후 최악”이라고 보도했다.

전날 시장에 큰 실망을 안긴 Fed 발표 여파에다 워싱턴DC의 ‘정치 리스크’까지 터져 투자 심리가 냉각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른바 ‘멕시코 장벽’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막기 위한 긴급 지출법안 서명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자 입국을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접경에 거대한 장벽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미 법무부가 중국 정부와 연계된 해커 두 명을 기소한 것도 향후 미·중 무역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지적됐다.

보통은 주가가 내리면 채권 수요가 늘어 채권값이 오르지만 이날은 예외였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은 오후 5시30분 기준 0.032%포인트 상승한 2.808%를 나타냈다. 수익률(금리)과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가격은 그만큼 떨어졌다. 5년물과 2년물 수익률도 일제히 올랐다. 전날엔 안전자산인 미 국채로의 쏠림이 강했지만, 이날은 Fed가 ‘점진적 추가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한 게 더 부각됐다.

위험자산으로 꼽히는 원유는 폭락세를 이어갔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2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2.29달러(4.8%) 하락한 45.88달러로 마감했다. 17개월 만에 최저치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내년 2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2.89달러(5.05%) 내린 54.35달러에 거래됐다.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경기 불안 심리가 증폭된 탓이다.

달러화 가치도 마찬가지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가 1% 이상 하락해 95.6까지 떨어졌다. 특히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일본 엔화에 대해선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 가치 하락은 미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투자자산의 ‘도미노 약세’ 속에 금만 ‘나홀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 둔화 우려가 증폭되면서 투자자 관심이 최고의 안전자산인 금으로 쏠리고 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현물은 1.6% 상승한 온스당 1262.84달러를 나타냈다. 금 선물은 0.9% 오른 1267.90달러에 거래됐다.

‘헤지펀드계 거물’로 꼽히는 데이비드 테퍼 아팔루사매니지먼트 설립자는 CNBC 인터뷰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모두 긴축에 나서고 있으며 무역전쟁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며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이날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시장 반응은 완전히 부풀려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Fed가 내년 금리 인상 횟수를 기존 세 차례에서 두 차례로 낮춘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내년 경제는 여전히 다른 나라보다 나을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