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경제는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경상수지 흑자는 늘어나는 ‘불황형 흑자’가 고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기는 더욱 침체될 겁니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은 18일 ‘2018 대내외 경기·금융시장 대예측 세미나’에서 “한국은 원화 가치가 떨어져야 수출이 늘고 이를 통해 침체된 경기가 되살아날 수 있다”며 “그런데 지금은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너무 커져 원화 가치가 오르고, 수출은 감소해 경기가 더욱 침체되는 악순환 상태”라고 진단했다.

한 위원은 이런 현상을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UC버클리 교수가 주장한 ‘안전통화의 저주’에 빗대 ‘원고(高)의 저주’라고 지칭했다. 1990년대 일본은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엔화 가치는 치솟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전통화로 각광받았다. 한 위원은 “엔고에 따른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정책 실수를 범했다”며 “그 바람에 일본 경제는 장기 복합불황에 빠져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2년 이후 인위적으로 엔저(低)를 유도하는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나오고 나서야 긴 침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지난 9월 이후에만 5조원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갔다”며 “외국인 매도 요인만 따지면 자금이 1조원 빠질 때마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원 정도는 올라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더 오르지 못하고 달러당 1120원 선을 맴돌고 있다”는 게 한 위원의 판단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 위원은 한국은행의 최근 금리인상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지난달 한국은행은 외국인 자금 이탈 방지와 부동산 가격 안정 등을 이유로 금리를 올렸다”며 “하지만 쇼크라고 불릴 만큼 악화된 고용사정을 감안하면 오히려 금리를 내려야 했다”고 지적했다.

권재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한국 대표는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기업투자가 부진한 데다 과도한 가계부채 부담 탓에 소비도 활성화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당장 위기를 겪진 않겠지만 큰 충격을 줄 리스크(위험)가 찾아오면 해외 투자가들이 기대하는 선진국 수준의 안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평가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