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펼쳐지는 자발적인 공동육아 모임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육아는 ‘마을’에서 함께 맡아왔다. 집 앞 골목에서, 시장에서 ,집과 가까운 일터에서. 육아의 역할과 책임도 ‘엄마’에 국한되지 않고 ‘형제’ ‘이웃’ ‘가족’과 같은 넓은 사회적 관계망에서 가능했다.
산업사회로의 변화는 이 관계망을 단절시켰고, 더 이상 아이들은 아이들 속에서 자라지 않고 마을 안에서도 자라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육아는 엄마만의 책임으로 변질되었고, ‘독박육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사회적 육아’ 즉 ‘공동육아’를 통한 성장이 이뤄질 때 더욱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공동육아를 위한 공동육아나눔터, 공동육아어린이집.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 마련 등 다양한 사회제도들이 점차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점들은 이를 뒷받침 한다.
그러나 절차상 어려움과 함께 운영을 위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은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여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마을에서는 자발적인 공동육아 모임 활성화 지원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는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을 통해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모임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의 요구와 필요를 충분히 반영한 자생적인 공동육아모임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2회에 걸쳐 서울을 중심으로 마을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공동육아 사례를 소개한다.

대안 교육을 만들어가는 ‘숲동이 놀이터’

은평구에 거주하는 직장맘 A 씨는 둘째 아이까지 낳고 소위 ‘독박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에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을 그만 둔 이후에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지만, 육아의 공감대를 함께 나눌 ‘사람’이 그리웠다. 그러던 중에 A 씨는 생협을 통해 ‘생태보전시민모임’에서 하는 숲속자연학교를 알게 되었다. 아이 친구 학부모들과 수요일마다 아이들과 산으로 강으로 생태활동을 다니면서 ‘이웃과 함께 키우는 육아’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던 즈음, ‘생태보전시민모임’에서 ‘아이들과 노는 엄마모임’을 제안했고 그때 손을 번쩍 든 것이 은평구 의 대표 공동육아모임인 ‘숲 동이 놀이터’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숲 동이 놀이터’는 북한산 자락에 있는 숲에 엄마와 아이가 일주일에 세 번 가는 활동을 주로 한다. 숲에 갈 때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져오지 않도록 했다. 새로운 장난감을 누군가 들고 오면 아이들끼리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숲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 돌 하나, 나뭇잎 하나가 장난감 보다 신기한 놀이도구로써 충분한 역할을 했다.
‘숲 동이 놀이터’는 엄마들이 당번을 정해 활동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나눔터를 담당하는 반장(터장)뿐만 아니라 일지 당번, 동화책 당번 등의 역할도 세분화했다. 당번이 아닌 엄마들은 병원이나 은행 등 개인적인 일을 보기도 하고 비폭력대화법, 생태전문가과정 등의 교육에 참여하면서 성장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숲에 갈 때는 도시락을 준비하고 숲에서 공동체가 함께하는 만찬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이도 엄마도 가리지 않고 평소보다 더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냈다.
‘숲 동이 놀이터’가 소문이 나면서 참여하는 아이들의 연령대도 다양해지고 참여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는데, 이것이 공동육아의 시너지를 가져왔다. 교복을 물려주거나 책, 옷, 장난감들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숲 동이 놀이터’를 찾은 학부모들은 “약하게 태어난 아이를 위해, 처음 서울에 올라와 외로웠던 자신을 위해,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해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어서, 외동이라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등 여러 이유와 사정으로 숲 동이를 찾았고, 함께하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모두 숲 동이를 통해 배우고 자랐다”고 말한다.
처음 ‘숲 동이 놀이터’를 시작했던 부모들은 아이들이 성장해 중학생이 되어 공동육아의 필요성은 줄어들었지만 함께 했던 부모들은 공동육아를 통해 다른 모임으로 더욱 확장해 갔다. 마을 문화 공간 ‘물푸레’를 운영하는 모임으로 성장한 것이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성장하는 ‘숲 노아’

노원구에도 숲 놀이를 매개로 한 공동육아 활동이 있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밀집된 노원에서 숲 놀이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엄마들이 모여 만든 ‘숲에서 노는 아이들’(이하 숲 노아)이 그것이다. 2014년 가을에 모임을 시작한 숲 노아는 주로 숲 놀이, 텃밭을 중심으로 한 생태놀이, 절기놀이로 ‘열두 달 산새 밥상’ 잔치를 벌이고, 문화놀이, 부모교육 활동을 진행한다. 주2회 수락산 숲 놀이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이 가운데 월2회는 이웃들에게 개방해 다른 관심 있는 학부모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 월1회는 아빠와 함께 하는 산행을 통해 부모가 함께 하는 육아의 장도 만들어나갔다. 잎사귀 모양으로 만든 ‘숲 노아 화폐’, ‘잎새’로 사용하던 물건을 나누는 ’잎새 시장‘도 연다. 이렇게 아이들은 숲 놀이 활동을 통해 자연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나갔다.
아이들의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들은 숨어있는 재능을 찾아냈고, 독박육아에 지친 엄마들은 육아피로감과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생긴 것도 큰 변화이다. 아는 사람 없는 노원구에 이사외서 홀로 육아를 하고 있던 엄마,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10년을 노원구에서 살던 주민들은 이제 정붙이고 살 수 있는 우리 동네가 되어 떠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주민모임에서 공동육아 협동조합으로 발전한 ‘배꼽친구’

‘느릿느릿 육아방’에서 출발한 중랑구의 공동육아 모임인 ‘배꼽친구’는 2013년 중랑구 영유아 가정 돌봄을 위하여 만든 모임이다. 두 돌 미만 아이부터 만3세까지 엄마가 가장 좋은 어린이집을 모토로 숲 놀이, 텃밭 가꾸기 등 생태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과 매주 한 차례씩 모여 신내동에 있는 텃밭을 일구고 인근 망우산에 올라 마음껏 뛰어놀게 한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주고 싶어 집 밥 모임을 만들었다는 배꼽친구는 동치미, 된장, 김치 등 발효식품을 만들기도 하고 텃밭 작물을 이용해 간식을 만들어 먹는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공모사업인 ‘우리 마을 지원 사업’을 통하여 지역의 마을공동체들과 연대하여 성장하였으며 2017년에는 구성원들이 십시일반 출자금을 모아 공간도 마련하고 중랑구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제 ‘배꼽친구’는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을 위해 초등 방과 후를 어떻게 마을 안에서 풀어갈지 고민 중이다. 마을 안에서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마을 살이’와 경제를 연계한 ‘마을 방과 후 학교’, ‘마을기업’ 등을 만들어 내고, 육아와 경제를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드는 방안도 함께 모색 중이다.

글= 송지현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협력기획팀장

정리= 경규민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