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창업 지원금을 받는 기술…"그들이 원하는 단어 다 넣어라"
‘4차 산업혁명’은 유행어가 됐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창업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 지원을 받아 밑천을 마련할 계획을 세우면서 이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키워드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빅데이터’다.

창업을 시작하면서 온갖 지원서를 썼다. 가장 공들인 원서는 최대 1억원을 지원해주는 ‘청년창업사관학교’와 ‘기술혁신형 창업기업 지원사업’이었다. 막상 지원서를 쓰려 하자 첫 장부터 고민에 빠졌다. ‘제조’와 ‘비제조’ 중 지원 분야를 구분해야 했다. 무작정 시작한 창업이라 어떤 질문보다 어려운 항목이었다.

정부 지원 사업에서 말하는 창업은 ‘나만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 개발해 판매하는 회사’를 만드는 행위다. 여기서 혼란에 빠졌다. ‘개발해 판매하는 것이 제조일까 아닐까, 비제조업으로 표시하면 뒷장은 넘겨보지도 않은 채 서류 단계에서 탈락하지는 않을까.’ 기관에 전화도 해봤다. 답은 예상대로 “무엇인가 만든다면 제조업이죠”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이면 제조업, 그렇지 않으면 비제조업이었다. 그나마 정부 지원 사업에서 비제조업(서비스)은 ICT로 통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결국 이 두 업종이 아니라면 정부 지원을 받기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업 선배들도 “제조를 기반으로 한 신기술이나 ICT와 연결하지 않으면 선정되기 어렵다”고 했다.

OhY Lab.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목표로 설립한 회사다.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교육업은 안타깝게도 제조 또는 ICT와는 거리가 있었다. 기로에 섰다. 정부 지원을 안 받든가, 타협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내야 했다.

결론은 타협이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2018년 가을학기 입교생으로 선정될 때 원래 생각하던 놀이도구에 증강현실(AR)과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결합했다. 심사위원들은 ICT에 해당하는 AR과 앱에 높은 점수를 줬을 것 같다. 그러나 솔직히 지금 수준에서는 아날로그식 놀이 도구의 비중이 더 높다. 놀이 도구 비중을 높인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템을 구상하며 시장 조사를 했을 때 무슨 짓을 해도 유튜브를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누군가는 이런 사업 전략에 대해 철학도 없이 유행을 따라간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래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더 큰 한 걸음을 위한 작은 옆걸음이라고. 혹시 아는가. 이렇게 만든 AR과 앱이 대박 나서 유튜브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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