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철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수석연구원(왼쪽)이 팀원들과 반도체 설비를 보며 토론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정원철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수석연구원(왼쪽)이 팀원들과 반도체 설비를 보며 토론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2018년 ‘다산기술상’ 대상의 영예는 정원철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수석연구원에게 돌아갔다. 정 수석연구원은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이용한 7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을 개발해 한국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도체 생산의 핵심 과정 가운데 하나인 노광 공정은 빛을 이용해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EUV 노광 장비는 기존 불화아르곤(ArF) 장비에 비해 파장 길이가 14분의 1 미만으로, 세밀한 회로 패턴을 새겨넣는 데 유리하다. 반도체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제한된 크기 안에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게 중요하다.

EUV를 적용한 7나노 공정은 삼성전자 독자 개발 기술이다. 개발 기간 560건 이상의 특허를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EUV를 활용한 7나노 공정을 적용하면 기존의 10나노 공정과 비교해 똑같은 크기의 웨이퍼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가 40%가량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전력 효율은 약 50% 개선되고, 반도체 성능은 20%가량 향상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향후 3년간 7나노 공정으로 모바일, 전장용 반도체 부문에서 3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EUV 장비 도입에 성공함에 따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1위인 대만 TSMC를 추격할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50.4%(작년 IHS마킷 기준)를 장악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7나노 양산 체제를 갖췄지만 여전히 불화아르곤 장비를 쓰고 있다. EUV 장비 도입은 내년으로 늦췄다. 향후 더 미세한 공정으로 넘어갈수록 EUV 장비 적용은 필수적이다. 선제적으로 EUV 기술을 활용한 7나노 공정에 성공한 삼성전자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군을 확대할 계획이다. 경기 화성 반도체 공장에 6조원 이상을 투자해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대규모 EUV 전용 공정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 공정 개발을 이끈 정 수석연구원은 서울대 금속공학과에서 학·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1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 입사했다. 2009년부터 현재 몸담은 반도체연구소 로직TD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번 공정 개발 이전에는 14나노 공정 개발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8890 제품 양산에, 8나노 공정 개발로 지난 11월 발표한 엑시노스9820 개발에 기여했다.

글로벌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삼성전자 연구원들에게 신기술 개발은 경쟁사와의 싸움이자 ‘자신과의 싸움’이다. 정 수석연구원은 “반도체 미세화 공정에는 이정표가 없어 도중에 길을 잃기도 하고 우왕좌왕하다 넘어지기도 했다”며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토대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뚫고 나가는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3년부터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세계 1위를 기록했던 삼성전자의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파운드리 넘버원’으로 거듭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