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은 ‘종전도 확전도 아닌 휴전’으로 마무리됐다. 그나마 ‘90일짜리 조건부 휴전’이다. 두 정상은 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통상전쟁 출구를 찾고자 했지만 종전선언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기로 한 추가 관세를 90일간 유예하는 대신 중국은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기술 탈취 등 ‘불공정한 무역 관행’ 개선을 위한 협상에 응하기로 했다. 어정쩡한 타협이 이뤄진 건 세계 경제 둔화 조짐이 완연한 데다 증시 등 금융시장 불안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90일간 미뤄진 ‘관세 폭탄’

美 '中 관세폭탄' 조건부 보류…경기둔화 우려가 '끝장대결' 막았다
미국과 중국은 이날 ‘주고받기’를 했다. 중국은 90일간 미국의 ‘관세폭탄’을 피했다. 미국은 지난 7~8월 5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 9월에 20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10% 관세를 매기면서 내년 1월부터 관세율을 25%로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현재 고율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 2670억달러어치 제품에도 10% 또는 2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렇게 되면 중국이 미국에 판매하는 전 제품이 ‘관세 폭탄’의 사정권에 들게 된다.

중국도 지금까지 미국산 수입품 1100억달러어치에 10~25%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은 연간 1300억달러어치에 불과하다. 미국과 동일 금액으로 관세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중국이 확전을 피한 이유다.

미국은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불공정 무역관행 문제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게 최대 성과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중국이 기술 절도, 외국 기업에 기술이전 강요, 산업스파이 활동, 환율 조작 등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중국이 ‘기술 굴기’를 위해 추진하는 ‘중국제조 2025’ 정책도 외국 기업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라며 폐지 또는 대폭 수정을 요구해왔다. 그동안 중국은 이런 논의 자체를 피했다.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몇 가지 부수적인 성과도 챙겼다. 우선 중국으로부터 미국산 농산물과 에너지, 산업제품 구매 확대를 추진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중국은 미국 농산물에 대해선 즉시 구매를 늘리기로 했다. 미국 농업지대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이 많은 지역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의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 NXP 인수도 가능성이 열렸다. 중국은 뚜렷한 이유 없이 퀄컴의 NXP 인수를 막았다. 중국산 펜타닐(마약성 진통제)의 미국 유입을 중국이 규제하기로 한 건 일종의 ‘덤’이다.

시장에 떠밀린 ‘휴전’

미·중의 조건부 휴전을 이끌어낸 요인으론 커지는 경기 둔화 우려와 금융시장 불안이 꼽힌다. 당초 미국은 타협보다 강공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3월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언한 이후 한동안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면서 대중(對中) 강경책이 힘을 얻었다. 미국 경제는 지난 2분기만 해도 4.2%(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 성장했고 뉴욕증시와 나스닥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고용 시장은 ‘완전 고용’ 수준이었다. 반면 중국은 상하이증시가 폭락하고 경제성장률 둔화가 뚜렷해졌다.

하지만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경제에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미 증시도 올해 상승폭을 모두 반납했다. 아직까지 고용 시장은 괜찮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잇따라 올리면서 불안이 커졌다. 지난 11월6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이 민주당에 하원을 내준 점도 트럼프 행정부에 부담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 각국도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산되면 미국과 중국 모두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중국은 이대로 가면 내년 성장률이 사실상 5%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일본 경기에도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