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난 28일 서울 마곡동 원앤온리타워에서 열린 임직원 행사에서 내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코오롱그룹 제공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난 28일 서울 마곡동 원앤온리타워에서 열린 임직원 행사에서 내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코오롱그룹 제공
홀가분해 보였다. 결코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금수저의 무게감’에서 해방됐다는 편안함이 역력했다. 새롭게 도전에 나선 창업 세계에 대한 설렘도 엿보였다. ‘망할 권리가 생겼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듯했다. 내년부터 코오롱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기로 한 이웅열 회장(62).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경영에 복귀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외아들인 이규호 전무(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35)에 대해서도 냉정했다. 능력을 인정받아야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니다 싶으면 주식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도 했다. 창업 계획에 대해선 “1년여간 공부한 뒤 모색할 것”이라면서도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창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창업 아이템이 어느 정도 추려진 듯했다. 29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간담회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듯했다’는 표현이 신선했는데.

이웅열 코오롱 회장 "절대 경영 복귀 안해…아들, 능력 없으면 주식 1株도 안 물려줄 것"
“23년 전 회장이 될 때부터 60세가 되면 은퇴할 것이라고 맘먹었다. 좀 늦어졌다. 최근 3년 동안 집중적으로 고민했다.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회사가 고꾸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걸림돌이 되지 말자고 결심했다. 진심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직원들이 해마다 한 번씩 중장기 계획을 보고한다. 그런데 보고로 끝이다. 보고서를 서랍 안에 넣어놨다가 1년 뒤 다시 꺼낸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수년 전 보고서와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너무너무 슬펐다. 과연 젊고 역동적인 CEO라면 그럴까 싶었다. 그래서 내려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조직에 모멘텀을 주는 것이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했다.”

▶계열사 사장들도 몰랐다는데.

“모두 깜짝 놀랐을 거다. 실무자 4명하고만 상의했다. 퇴임사도 직접 썼다.”

▶금수저라는 표현이 너무 새로웠다.

“(쑥스럽게 웃은 뒤) 금수저가 의외로 무겁더라. 깨뜨려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 망해서도 안 되고. 창업했으면 몰라도 물려받은 회사이기에 더욱 그랬다. 회장으로 23년 재임하는 동안 사내외 회의에서 단 한 번도 졸아본 적이 없다. 그런 중압감이 있다.”

▶그래도 대주주 지위는 유지하는데, 중요한 순간엔 경영에 참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멀어질 생각이다. 회사와 직원들로부터 떨어져 있을 예정이다. 아예 연락도 못 하게. 전화도 받지 않겠다. 물론 주주로서 책임과 의무는 다할 계획이다. (외국에 나가 있을 것 같은 뉘앙스였다.)”

▶회사가 어려워도 안 돌아올 생각인지.

“물론이다. 경영자로 돌아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규호 전무(아들)는 언제 경영권을 물려받나.

“언제? 능력이 검증돼야 한다. 지금 기회를 준 것뿐이다. 본인이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아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스스로 키우지 않으면 사회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들을 믿는다. 나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나다.”

▶만에 하나, 이 전무의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주식은 한 주도 물려주지 않을 거다. 지금도 한 주도 없다. 다만 아버지로서 재산을 물려주겠지. (이 회장은 그러면서 이 전무가 잘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부정(父情)이 듬뿍 묻어났다.)”

▶창업을 한다고 했는데.

“우선 공부해보려고 한다. 솔직히 변화에 따라가기 힘들었다. 블록체인만 해도 그렇다. 작년 미국에서 40여 명의 전문가를 만나 공부했지만 아직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일단 회사만 만들어 놓고 사람만 뽑아줬다. 앞으로 벤처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려 한다. 서두르지 않고 약 1년간 뭘 할지 잘 찾아보겠다.”

▶아이템은 정했나. 바이오산업은 어떤가.

“아직 정해진 게 없다. 바이오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관절염 치료제인 인보사 개발 사업을 시작한 게 28년 전이다. 그런데 1년 전에야 시판했다. 27년 걸렸다. 그만큼 어렵다. 하지만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창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창업하면 직접 CEO를 할 건가, 젊은 사람들에게 자금을 대줄 건가.

“둘 다 염두에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천재들을 도와주고 싶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국내에서 나오도록 놀이터를 만들어 주려 한다.”

▶회장직을 맡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적은.

“외환위기 때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노조와 부딪쳤을 때다. 조합원들이 집까지 쳐들어와 유리창도 깼다. 말리는 사람이 다쳐 19바늘을 꿰매기도 했다. 절망적이었다. 그때 망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아니 망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다른 경영진과도 ‘우리 망하자’고 결의했다. 그리고 원칙을 지켰다. 노조를 끝까지 설득했다. 그 뒤 노사관계가 아주 좋아졌다. 생산성도 올라갔다. 국제적 수준까지 올랐다. 노조와 진심으로 상생한 결과다.”

▶지금도 당시 노조원들과 잘 지내는가.

“어제 그만둔다고 발표한 뒤에 바로 통화했다. 당시 평조합원들이 지금은 간부가 돼 있다. 자신 있는 게 체력이다. 틈만 나면 현장에 가서 직원들을 만났다. 사진 찍고, 밥 먹고 어울렸다. 기업문화만큼은 자부할 만하다.”

▶‘짝퉁시계’ 해프닝이 있었다던데.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골프를 치러 가서 시계를 풀어 캐디에게 건넸는데 실수로 땅에 떨어뜨렸다. 깨졌다. 매니저가 와서 사과했다. 캐디는 미안해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래서 ‘그거 2만5000원짜리 짝퉁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정말 짝퉁인가.

“(껄껄 웃으며) 수리를 맡겼는데, 꽤나 걸린다고 하더라. 수리비는 비밀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